[횡설수설]김재홍/캠퍼스의 북한인권 논쟁

  • 입력 1999년 8월 12일 19시 27분


서울대에 북한 인권상황을 비판하는 벽보와 그에 대한 반박문이 나붙었다고 해서 화제다. 한때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이른바 주사파가 지배하기도 했던 대학 캠퍼스에서는 지금까지 없던 일이다. 발단은 서울대 벽에 붙은 전북지역 총학생회 대표자협의회 이름의 대자보가 북한을 비판한데서 시작됐다. 북한 동포를 구하기 위해서는 북한내부의 민주화가 유일한 길이라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학생단체는 탈북자의 고난을 담은 수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북한이 지구촌에서 가장 열악한 인권후진국 중 하나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북한 인권을 개선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다른 정책들에 비해 매우 미미하다. 그래서 햇볕정책이 북한 상층부만 따뜻하게 해주고 있을 뿐 인권탄압에 시달리는 일반주민들은 도외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해 봤자 소용이 없으리라는 생각도 크게 작용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당국은 인권 기준이 우리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의식주와 교육 의료를 해결해 주는 것이 인권보장이라고 해 왔다. 그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 집단주의이므로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인권문제가 아니라는 논리다. 인권 기준에서 사회주의와 자유주의가 처음으로 합의를 이룬 역사적 무대는 1975년 헬싱키선언이었다. 동구권이 서방진영으로부터 사회주의 블록의 국경선을 공인받는 대가로 자유주의적 인권개선 조항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인권정책은 ‘총성 없는 공격’에 비유된다. 동구권의 동토(凍土)를 녹이는 화학적 촉매제 역할을 한 헬싱키선언이 그 입증사례다. 북한의 인권개선 주장에 반대하는 서울대 학생단체들의 벽보는 그것을 국내 보수세력이 이용한다는 논지를 폈다. 그러나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주민을 구휼하는 문제는 인권논쟁의 차원을 넘어 우리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할 ‘본질적 인권’ 사항이다.〈김재홍 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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