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자민련의 돈봉투

  • 입력 1999년 8월 1일 19시 21분


내각제 연내개헌 유보로 극심한 내홍(內訌)에 시달리고 있는 자민련 지도부가 소속 의원들과 지구당위원장들에게 ‘돈봉투’를 돌려화제다. 액수는 현역의원 200만원, 원외지구당위원장 100만원씩.

박태준(朴泰俊)총재는 최근 며칠동안 의원들을 그룹별로 나눠 식사모임을 가지며 “당의 단합을 위해 노력해달라”며 봉투를 나눠줬다.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도 총리실을 찾는 당 인사들에게 돈봉투를 주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충청권 내각제 강경파에 대한 ‘입막음용’이라는 풀이가 많다. 돈봉투가 즉각 ‘약효’를 발휘한 것은 아니겠지만 요즈음 강경론이 주춤해진 것도 사실이다. 돈봉투를 받았다는 한 충청권의원은 “한마디로 찜찜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총재측은 “여름휴가비 명목으로 이미 오래전에 결재가 난 것인데 정국이 어지럽다보니 집행이 늦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름 휴가철의 ‘관행’인데 오비이락(烏飛梨落)격이 됐다는 것.

자민련은 4월 한나라당 서상목(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 표결 직전 소속의원들에게 200만원씩이 든 돈봉투를 돌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때도 자민련은 명쾌한 해명을 하지 못했다.

정치권과 돈봉투. 그것도 미묘한 시기마다 돌려지는 돈봉투….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떳떳하게 생각하지 않는 돈봉투를 ‘정치권의 관행’이라고 넘길 수만 있을까.

“지난해말 어떤 분을 수행해 외부행사에 갔는데 한 외국인가족이 와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분은 대여섯살로 보이는 꼬마에게 ‘참 예쁘다’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지폐를 한장 꺼내 주더라. 엉겁결에 돈을 받아든 외국인꼬마와 그 부모의 표정이 어찌나 묘하던지….”

얼마전 정부의 한 공무원이 전해준 자민련 고위인사에 관한 얘기다.

이철희<정치부>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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