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만년 수다쟁이 소녀」이성미

  • 입력 1999년 8월 1일 19시 21분


늙지 않는 ‘여자 피터팬’, 인동초(忍冬草) 개그우먼, 꼼꼼나라 여왕, 딱따구리, 촉새….

개그우먼 이성미(40)를 가리키는 별칭은 꽤 많다.

팬들과 가까운 동료들이 붙여준 이 호칭들에는 그럴만한 사연들이 담겨 있다. ‘촉새류’는 주로 팬들이 선사한 것. 수다에 가까운 빠른 말과 순발력에서 나온 애칭이다. 피터팬과 인동초에는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고도 여전한 소녀티와 한때의 개인적 상처로 방송을 떠나야 했던, 굴곡많은 인생 역정이 깔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연예계 동료들이 작명한 꼼꼼나라 여왕이 가장 마음에 든단다. “내가 봐도 대단히 꼼꼼한 편이예요. 여왕은 저고, ‘꼼꼼나라 대왕’은 이홍렬선배죠. 그래도 좋잖아요, 여왕인데….”

서울예전 동기생인 개그맨 김은우와 함께 나간 80년 당시 동양방송(TBC)개그콘테스트가 성우 지망생이었던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상금을 절반 나누자는 제안에 엉겁결에 출전했던 그는 뜻밖에도 대상을 차지했고 개그우먼 1호라는 수식어도 얻었다. 이 대회 동기가 김형곤 장두석 조정현이다.

그로부터 20년. 요즘도 그는 SBS ‘이경실 이성미의 진실게임’ 메인 MC를 비롯해 TV와 라디오에서 4개의 프로에 출연하고 있다. 교통방송(TBS)‘웃는 세상 좋은 세상’은 탤런트 김성환과 8년째 붙박이로 진행중.

폭발적인 인기는 아니지만 동료 후배가 하나둘 개그계를 떠난 자리에서 여전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파트너쉽 아닐까요. 누가 ‘뜨는’ 꼴을 못보면 결국 둘 다 죽어요. 혼자 튀기 보다는 상대방의 ‘밑받침’이 되주겠다고 생각해요. 컵은 깨져 없어져도 밑받침은 오래 가더라구요.”

여기에 꼼꼼나라 여왕이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개그계 ‘왕언니’의 메모 습관도 프로의 근성을 보여준다. 최근 메모에는 반포대교쪽은 버스전용차선이 중앙선쪽에 있으면 좋겠다는 것과 무단횡단하는 아줌마에 대한 느낌이 적혀 있다.

그러나 그의 연기세계에 대해 아쉬움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MBC 주철환PD는 “이성미씨는 개그우먼의 자존심을 지켜온 인물”이라면서도 “수다쟁이 소녀의 틀 속에 20년째 머물러 있다”고 말한다.

이성미는 “캐릭터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지만 쉽지 않았다”며 “점점 얼굴 변화가 심해지는(늙어가는) 걸 보면 이제는 변화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며 웃는다.

요즘 그는 ‘이야기 아줌마’로 출연중인 EBS ‘딩동댕 유치원’에 푹 빠져 있다.

“옛날 성우에 대한 꿈도 생각나고 아이들과 지내는 게 즐거워요. 기회가 되면 만화영화 더빙에 꼭 참여하고 싶습니다. ‘이성미는 입만 갖고 살라’는게 내 운명이지 싶어요.”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