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진형구씨의 휴대전화

  • 입력 1999년 7월 28일 19시 35분


‘공개수배 사건25시’라는 TV프로가 드라마나 쇼 프로에 식상한 시청자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범죄를 저지르고 달아난 용의자의 사진이나 몽타주를 공개하고 사건 개요를 드라마로 재구성해 보여주는 이 프로는 논픽션이나 다큐멘터리 특유의 생동감으로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날로 다양해지는 현대 사회의 범죄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시청자들은 자신이 피해자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TV가 보여주는 범죄의 세계에 빠져든다.

▽지난 4월 영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범죄 프로를 진행하던 BBC방송의 여성앵커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런던 경시청은 이 프로를 통해 수배를 당한 용의자나 범죄집단의 보복살인인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였으나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이 프로에 방영된 상당수의 용의자들이 시민제보를 통해 검거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꼭꼭 숨어 도피중인 용의자들도 TV의 위력 앞에는 맥을 못추는 모양이다.

▽최근 이 프로에는 범인들이 다른 사람 명의로 휴대전화에 가입한 다음 범죄에 이용하는 사례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범행이 발각됐을 경우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를테면 서울역의 노숙자를 꼬드겨 약간의 돈을 주고 이름을 빌리거나 위조 또는 변조된 주민등록증을 사용해 휴대전화를 손에 쥐는 방법 등이다. 휴대전화 보급에 따른 새흐름이다.

▽진형구(秦炯九)전 대검 공안부장이 조폐공사 파업을 유도했다는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강희복(姜熙復)전 조폐공사 사장에게 제삼자 명의의 휴대전화를 전해주고 비밀통화를 했다는 보도다. 사무실이나 집 전화를 쓸 경우 통화기록이 드러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떳떳한 내용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검사로서 범죄자를 다뤄온 진씨가 은연중 그들의 행태를 흉내낸 것은 아이러니다.〈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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