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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7월 27일 19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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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걱정대로 한국사회는 숨돌릴 틈도 없이 터져나오는 각종 비리사건으로 이미 그로기상태다. 탈주범 신창원사건에 이르러서는 사회전반에 불신분위기가 꽉 찼다. 경찰이야기보다 신창원 도주일기에 관심이 더 쏠릴 정도니 아무리 사람사는 세상일이라 하더라도 분명 정상이 아니다.
사회가 알게 모르게 골병드는 데도 정치판은 따로 돌고 있다. 내각제 개헌논의 유보로 불신감이 증폭되자 정파마다 ‘나살고보자 몸불리기’식 영입으로 들끓고, 여기에 전직대통령까지 끼어든 판이지만 이에 관심있는 시민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지.
현정권은 출범 후 개혁을 가장 앞세워 왔다. 그런데 지금 과연 개혁의 모습은 어떤가. 분야별 개혁에 대해 아무도 확실한 전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 특히 경제개혁에선 조율이 안되고 허둥대는 정도가 심하다. 외국전문가들의 걱정이 더크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개혁’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개혁사정’이다. 지난 2년간 적발된 공직자뇌물범죄는 150여건, 1600여명이 구속됐다. 당장 시급한 생활개혁은 기대할 수 없게 된 보통사람들로서는 “개혁이란 결국 사람 잡아넣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게끔 됐다. 이것이 개혁의 참모습은 분명 아닐 텐데도 말이다.
★ 民心만 탓 해서야
“정부의 뜻을 너무 몰라준다. 국정을 쇄신하려는 단심(丹心)뿐인데…”라는 말이 나온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민심의 반응은 어떨 것인지’사이의 괴리(乖離)를 판단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민심이 따라와주지 않는다고 탓만 하는 것 같다. 여권의 고위관계자도 개혁이 주춤거리는 것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두려움 때문일까, 증오심 때문일까.
인간의 본성을 잔인하게 꿰뚫어 보았던 중세 이탈리아의 정치가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는 ‘지도자는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지도자의 요건을 꼽았다. 위급한 때일수록 사랑했던 지도자는 쉽게 저버릴 수 있지만 두려웠던 지도자는 처벌이 무서워 배신할 수 없다는 요지다. 그러면서 그는 두려움의 대상은 되더라도 절대로 증오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 모두 잃고 만다는 것이다. 500년 전 이야기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통합의 정치 아쉬워
현정부가 들어설 때 솔직히 포용정치를 기대했던 사람이 많았다. 김대통령의 연륜과 경륜을 보면서 과거 정권과는 다른 출발을 예상했다. 그러나 대북 포용정책은 있으나 내치(內治)엔 그렇지 않았다. “집권하자마자 DJ가 이회창(李會昌)씨를 껴안고 나갔다면 지금쯤 이회창씨는 정치적으로는 사실상 죽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그것이 가장 두려웠는데….” 한나라당 고위관계자의 말은 여러가지를 생각케 한다.
그런뜻에서 현상황의 진원이 사회전체를 추스르는 통합정치의 부족 때문이 아닌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가경영에서 모든 분야의 에너지를 통합해가는 일만큼 중요한 명제가 또 있겠는가. 더욱이 지역정당과 소수정권이란 한계를 지닌 현정권으로서는 더욱 절실한 것 아닌가. 통합의 정치는 개혁작업에 우선하는 것이고 또한 양립(兩立)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그말은 개혁은 그만두고 적당히 얼버무리고 가자는 이야기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질문 전에 “개혁을 내세워 추구한 것이 오늘날 사분오열(四分五裂)된 사회인가”에 대해서도 명확히 답해야 한다. 통합과 개혁을 굳이 구분하겠다면 통합의 득실과 개혁의 득실을 현실적으로 교량(較量)할 필요가 있다.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 많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나라경영의 요체 아닌가.
알게 모르게 지금 우리사회는 분야별로, 계층별로, 지역별로 조각조각 떨어져나가는 모습이다. 집권여당은 야당의 훼방때문에, 반개혁세력의 저항때문이라고 이유를 댈지 모른다. 그렇다고 팽배한 불신감을 수속(收束)못하고 사회를 표류시켜도 내년 총선에만 가면 만병통치약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불신에서 오는 증오가 지지를 넘어선다면 문제다.
최규철<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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