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TV발명]「TV아버지 원조 」英-美 자존심 싸움

입력 1999-07-14 18:36수정 2009-09-2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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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의 아버지’는 존 로기 베어드 한 사람만이 아니다.

미국인들은 필로 판스워스나 블라디미르 줘리킨을 ‘텔레비전의 아버지’라고 칭송한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베어드가 ‘진짜 텔레비전의 아버지’라고 반박한다. 양 대륙간의 70여년에 걸친 이같은 논쟁은 오늘날까지도 확실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이 세사람은 1920년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이다.

베어드가 영국에서 기계식 TV발명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판스워스와 줘리킨은 미국에서 전자식 TV시스템을 발명하겠다는 야망을 불태웠다. 줘리킨은 23년 최초의 전자식 TV 특허신청을 냈지만 미국 특허청은 이를 기각했다.

무선에 의한 최초의 이미지 전송은 24년 베어드의 작품이다. 그러나 판스워스도 27년 화면 전송에 성공했고 이어 전자식 TV의 특허를 취득했다. 줘리킨도 질세라 33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TV를 개발했다. 세 사람이 서로를 의식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미국에서 활동했던 판스워스와 줘리킨은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었다. 1932년 두 사람은 TV의 특허권을 놓고 재판까지 벌였다. 미국 법원은 재판에서 판스워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판스워스의 이름은 지금 각종 기록물에서 이름이 지워져있다. 오히려 줘리킨이 미국내 TV발명의 적자격인 판스워스의 자리에 올라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유는 줘리킨이 미국 최대의 가전제품 회사인 RCA에 소속돼있었던 반면, 판스워스는 홀로서기를 시도했기 때문. 이 때문에 재판에 진 RCA가 조직적인 힘을 이용, 판스워스를 역사속에서 지우려한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영국의 베어드도 판스워스와 신세는 비슷했다. 기계식 TV를 최초로 발명하는데는 성공했지만 35년 EMI사가 개발한 전자식 TV와의 경쟁에서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이 됐다. 개인의 힘은 조직앞에서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그렇다면 TV발명에서 베어드의 업적을 어떻게 평가할 수있을까.1928년2월11일자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이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려주고 있다.

‘베어드의 업적은 더욱 빛나고 극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대기업의 수많은 물리학자와 공학자들이 공동 연구할 만큼 어려운 작업을 베어드는 혼자의 노력으로 해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의 텔레비전이 어떤 형태이든 TV개발의 초기를 이끌었던 사람은 바로 베어드다.’

〈헤이스팅스〓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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