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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7월 8일 19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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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구 중얼거리는 동안에 정희는 부엌 쪽마루에 걸터앉아 우리 모녀를 구경하구 있었어요. 나는 익숙한 솜씨로 아가의 궁둥이에 베이비 파우더를 뿌리고 두 다리를 잡아 올려 기저귀의 뒤쪽을 고무줄에 끼우고 두 다리를 내리고 오무려서 앞쪽을 여며 주었지요. 안아 올려서는 가슴에 안고 준비해 두었던 젖병에다 정량을 타서 한 손으로 흔들었어요. 쪽문 너머에서 정희는 나의 모든 행동을 홀린 듯이 넘겨다 보았구요.
우유 먹이는 거야?
응, 첨에 한동안은 모유를 먹였는데 어쩐지 점점 모자라.
알 수 없어. 누구나 그런가? 아이를 몇 명 낳아 기른 여자처럼 늠름해.
저절로 다 하게 되는 거야.
나는 은결이에게 우유를 다 먹이고나서 가슴에 비스듬히 세워서 안고는 등을 몇번 토닥여 주었습니다. 아기가 트림을 했지요. 다시 은결이를 자리에 눕히고는 나직하게 자장가를 불러 주었구요. 그건 어릴 때부터 할머니를 통해서 어머니에게 전수되고 어머니가 동생을 재우면서 하던 단조로운 곡조의 그 노래였지요.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멍멍개야 짖지마라 꼬꼬 닭아 우지마라 쥐도 자고 새도 자고 하늘 나라 아기 별도 새록새록 잘도 잔다 엄마 품에 꼭 안겨서 칭얼칭얼 잠노래를 그쳤다가 또 하면서 쌔근쌔근 잘도 잔다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정희가 다녀간 뒤로 전 보다는 마음이 훨씬 편해졌어요. 은결이는 벌써 기어 다니기 시작했고 나를 보면 방글방글 웃기까지 하구요. 아기가 자랄수록 세월은 어찌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십일 월 중순에 첫눈이 내렸어요. 싸락눈이긴 했지만 첫눈이 빨리 오면 이듬해 과일이 잘된다고 갈뫼 사람들은 말했지요. 나는 봄이 되면 나와 은결이의 새 생활을 위해서도 여길 떠나야겠다고 작정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대학원에 가기로 결심했다구 했잖아요. 이제 시골에서의 여학교 교사 생활은 나의 불투명한 사생활로 끝장이 났으니까. 아니 무엇보다도 나는 자신의 길을 혼자 가야만 했거든요. 나는 당신과 있을 적보다 더 강인해졌다고나 할까.
어느 날 우유도 잘 먹고 흥얼대며 놀기도 잘했던 은결이가 밤이 되니까 이상한 기침 소리를 내면서 우는 거예요. 이마에 땀까지 흘리고. 그래 손을 대봤더니 아주 뜨거워요. 나는 아무 것두 모르니까 겁이 나고 더 더욱 무서운 건 이 아이가 잘못되면 세상에는 오직 나 하나 밖에 남지않게 된다는 사실이었어요. 나는 아이를 포대기에 뚤뚤 말아 들쳐업고 그위에다 아기이불까지 덮어 씌우고는 우선 아랫집 사모님에게로 달려 내려갔어요.
사모님 우리 은결이가… 큰 탈이 났어요!
사모님과 교감 선생님이 마루로 뛰어나와 아기의 머리에 손도 짚어 보고 하더군요.
열도 많고 숨소리가 갈그랑거리는 것이 심상칠 않은디. 얼릉 전화혀서 택시 부릅시다.
교감선생님이 차부에 전화를 하고 사모님은 외투를 걸치고 나와 함께 읍내 병원에 갈 채비를 차렸어요. 나는 택시를 기다리던 그 순간에 저절로 엄마의 충실한 교인으로 변해서 다른 기도는 할 줄 몰라 그저 주기도문만 주문처럼 되풀이해서 외웠어요.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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