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한국 政黨의 대변인들

  • 입력 1999년 5월 14일 19시 08분


염라대왕 앞이라 셋 다 고개를 조아린다. 이승에서야 정당 대변인이라해서 재기도 했지만 다 끝난 일이다. 그래도 이승의 총재 앞보다 별로 떨리지는 않다. 총재의 하문이야 늘 예측불허였지만 오늘 심문은 빤할 빤자다. 전생에 왜 그리 진저리나는 욕설로 상대 가슴을 쥐어뜯고 지샜느냐는 것일 게다. 하고 싶어 한 짓이람. 본변(本辯) 아닌 대변(代辯)의 처지를 설마 모르실리야.

▽“대왕, 우리가 무슨 죄입니까. 싸움질로 지고 새는 한국 정당판에서는 총재나 지도부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요. 그분들은 우리의 응원가에 잠을 깨고 비방 고함을 자장가 삼아 눕습니다. 어차피 국리 민복은 마음에 없는 입발림이요, 내용이 없는게 정치니까 말꼬리잡기 어깃장으로 세월보내는 거지요. 수 틀리고, 안되는 일은 죄다 상대방 잘못으로 덮어씌워 우악스러운 성명서로 발표하면 그만이니까요.”

▽“검증이 없는 한국정치에는 말과 겉치레가 최고지요. 민생을 파고들어 해결책을 구하는 건 누가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대변인실에서 욕질과 고함부터 배워야 정치 길이 활짝 열리지요. 부대변인단이라는, 미사일보다 강력한 엘리트 욕쟁이들을 여러명씩 보유하고 있는게 세계적인 특징이고요. 흔히 욕질은 욕먹는 자, 전하는 자, 욕하는 자 모두 손해라고 합니다. 그중 욕하는 놈이 제일 손해라는 답도 있고요. 하지만 한국에서야 거꾸로지요.”

▽염라대왕이 탄식한다. “운동시합에서도 선수끼리 욕하고 골리는 짓은 삼가는 게 아닌가. 한심무쌍한 게 정치판이라고는 들었다만, 그대들은 그저 동수상응(動須相應)으로, 네가 떠드니 나도 살기위해 욕질이다해서야 될일인가. 용서받지 못하리라.” 이어 선고. “한국의 ‘대변인분(大便人糞)’들, 그대들은 다시 한국땅에 대변인으로 환생(還生)하여 쌓은 죄업을 닦으라.”

〈김충식 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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