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안정환 독한 마음 『겉멋은 그만』

  • 입력 1999년 5월 13일 19시 34분


1월 부산 대우 사무실. 안정환이 안종복단장을 찾았다.

“단장님, 저도 매니저 두고 모든 걸 매니저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런건 유럽진출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 지금은 구단이 다 알아서 해 주잖아.”

좋은 말로 안정환을 돌려 보냈지만 그때부터 안단장의 ‘채찍질’은 시작됐다. 안정환이 대우자동차 광고와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겉멋’이 들었다고 판단한 것.

안정환은 들뜬 마음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팬의 전화에 유명 패션디자이너의 모델 제의까지…. 몰래 숙소를 빠져나가면 모든 게 제 세상 같았다.

일화 하나. 부산대우는 지난해까지 50평짜리 아파트 두채를 빌려 숙소로 썼다. 그러나 숙소는 그를 보고 싶어하는 5백여 청소년 팬으로 북적거렸다. 주민의 분노를 견디지 못한 구단은 3월 부산 외곽으로 숙소를 옮겼다.

안정환이 마음을 다잡은 계기는 3월28일 브라질대표팀과의 친선경기. 자신의 실력만을 믿고 있던 그에게 허정무 대표팀감독은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깊은 좌절. 99대한화재컵이 시작됐지만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슬럼프가 아니었다.

안단장은 다시 안정환을 불러 “세계적 선수가 되려면 ‘영스타’에 안주하면 안 된다. 네 기술과 유연성은 10년에 한번 나오기 어렵지만 근성이 부족해”라고 회초리를 들었다.

며칠 뒤. 안정환은 뼈저리게 반성한 듯 안단장에게 “이제 모든 걸 잊고 축구에만 신경쓰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안정환은 외출도 삼가고 야간 개인훈련도 계속했다. 개인플레이 습성도 고쳤다.

12일 포항스틸러스전. 안정환은 전반 27분 페널티지역에서 뚜레와 2대1 패스로 첫 골을 뽑았다. 예전같으면 그는 혼자 치고 들어가 슛을 터뜨렸을 것이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치렁치렁한 머리도 깎으려던 안정환은 마음을 바꿨다. 헤어스타일이 아니라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김호성기자〉ks1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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