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104)

  • 입력 1999년 4월 30일 19시 45분


경자라는 아가씨가 또 있었는데 얼굴이 둥글넙적하고 눈이 가늘고 몸매도 뚱뚱했다. 처음 인사할 때 어찌나 얼굴이 빨개지던지 양쪽 귀에 꽃이 피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네들 중에서는 명순이가 가장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격이었다.

벌집이 늘어선 언덕을 올라가면 좀 더 높은 쪽에 열 다섯 평이나 넓어 봐야 스무 평도 채 못 되는 날림으로 지은 시멘트 벽돌 집들이 비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다닥 다닥 붙어 있었다. 지붕은 슬레이트에다 문짝은 판자였지만 각 방마다 부엌이 딸려 있고 집 안에는 변소와 빨래를 할 수 있는 수도깐이 있는 마당도 보였다. 그러니까 이 동네에서는 가난하기는 하여도 벌집 보다는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인 셈이었다.

내가 판자 문을 밀고 들어서니 문간방의 명순이들 부엌에서 기름 냄새가 요란했다. 나는 부엌으로 고개를 기웃이 하면서 말을 걸었다.

무엇들 하쇼?

아유 어서 오세요.

아낙네처럼 월남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수건까지 질끈 동인 명순이가 석유곤로 위에 프라이팬을 얹어 놓고 전을 지지던 중이었다. 순옥은 내가 들고 온 비닐 봉지를 받아 들었다. 나는 케익을 방안에 들여 놓았다.

저건 뭐죠?

생일 케이크요.

명순이가 감동은커녕 무덤덤하게 말했다.

우리 미스터 박은 단 걸 별루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두 생일이라니까. 박 형이 좋아하는 게 도대체 뭐지?

명순은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자구 깨면 맨날 술 생각 뿐예요. 그것두 독한 쐬주로.

참, 술을 빼먹었네!

괜찮아요. 지가 사오겠지 머. 두 병 사다놓은 것두 있구요.

나는 그네들의 방에 들어가 앉고 두 여자는 음식 준비를 계속했다.

한 사람은 어디 갔어요?

순옥이가 말했다.

경자는 회사에서 아직 안왔어요. 오늘 잔업 들어간대요.

음식을 벌여 놓고 가운데에는 케이크를 포장 상자에서 꺼내어 초까지 꽂아 놓고나니까 제법 호화판 생일 잔치처럼 보였다.

불안해 죽겠네. 왜 여태 안 오는 거야?

명순이 밥상 머리에 팔짱을 끼고 앉아 투덜거렸다. 담배를 한 대쯤 태울 무렵하여 휘파람 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리며 박이 문간에 들어섰다.

어어 미안함다아. 오래들 기다렸어?

국두 다 식었잖아. 우리끼리 다 먹어 버릴래다 말았어. 근데… 술은 없다.

명순이의 퉁명스런 말투에도 기 죽지 않고 박은 들고 온 봉지를 쳐들어 보였다.

짜잔, 사 홉 들이 네 병 사왔지롱.

어이그 저 웬수.

박 형 이리 앉아. 어서 시작해야지.

허허 머리털 나구 케키루 생일 먹긴 처음이네. 이거 약간 근지러운데?

우리는 상 주위에 둘러 앉았다. 내가 라이터로 키 큰 초와 작은 초에 불을 붙였다. 명순이가 치마 바람을 일으키며 얼른 일어섰다.

가만 가만. 이왕이면 분위길 잡어야지.

그네가 형광등을 끄자 방 안에 케이크의 촛불 빛만 남았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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