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인 북]「시뮬라크라의 시대」

  • 입력 1999년 4월 16일 20시 22분


8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 봇물처럼 터져나온 포스트모더니즘. 인간을 이성(理性)의 굴레에서 해방시켰다는 찬사와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공허한 논의였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아온 포스트모더니즘이 21세기에도 유효할 것인가.

이정우 전 서강대교수(철학)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포스트모더니즘이 21세기 철학의 빛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견해를 담은 책이 ‘시뮬라크르의 시대’. 부제는 ‘들뢰즈와 사건의 철학’이다.

들뢰즈의 ‘사건의 철학’은 무엇인가? 들뢰즈의 시뮬라크르는 ‘순간적인 것’‘사건’‘이미지’ 등을 말한다. 즉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순간적인 생성, 사건이다. 전통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가치없다고 무시했던 것들. 저자는 눈물이나 미소처럼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표정들, 야구경기에서 홈런을 날렸을 때의 극적인 순간 등을 그 예로 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짧은 순간, 즉 생성의 순간에 의미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외형적인 변화는 없을지라도 우리 삶에 커다란 변화를 주는 의미있는 사건이기에 이것에 가치를 부여하자는 것이 들뢰즈의 시뮬라크르 사유라는 설명이다.

그러면 들뢰즈의 시뮬라크르는 철학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플라톤 이래 전통철학의 주류는 본질적인 것, 영원한 것(이데아)에 대한 집착이었다. 시뮬라크르는 주변적인 것, 쓸모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들뢰즈의 시뮬라크르는 기존 철학에 대한 전복이자 사유의 혁명, 세계관의 변혁이다. 이것은 나아가 최근 활발히 논의되는 카오스 우연 불연속 욕망까지도 사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들뢰즈는 미셀 푸코,펠릭스 가타리 등과 함께 20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 95년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함으로써 충격을 주었다.

[들뢰즈 참고 서적]

△앙띠오이디푸스(들뢰즈 외·민음사)

△프랑스 철학과 우리(이정우 외·당대)

△탈주의 공간을 위하여(이진경 외·푸른숲)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