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배인준/정글속의 기업들

  • 입력 1999년 3월 26일 19시 01분


「21세기. 고고학 교수와 학생들이 지하세계 발굴에 나선다. 독특한 모양의 병이 발견된다. 학생들이 뭐냐고 묻는다. 교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도저히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 순간에 다들 가방에서 펩시콜라를 꺼내 마신다.」 몇년전 ‘차세대의 선택’이라는 타이틀로 펩시콜라가 내놓았던 TV광고 한 토막이다. 문제의 병은 코카콜라 병.

▽미국 비즈니스위크지가 1월에 선정한 ‘주목해야 할 세계의 경영인 22명’ 중에는 코카콜라의 더글러스 아이베스터회장도 들어 있다. 그런데 그는 25일 코카콜라 미국보틀링회사 1백주년 기념식에서 “작년은 최악의 해로 기억될 것”이라고 침통하게 말했다. 코카콜라는 심한 수익감소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주가 하락행진이 계속돼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지수 10,000포인트 안착의 걸림돌로 지목된다. 아시아와 러시아 경기침체가 주요인이라지만 아무튼 월 스트리트에서는 ‘코카콜라의 위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 나돈다.

▽펩시콜라 광고가 코카콜라에 대해 암시한 상황이 현실화할 것으로는 상상되지 않는다. 그 광고는 한국적 잣대로 보면 비방광고로 제재받기 십상인 내용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해 세상사에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정글과도 같은 기업세계에선 특히 그렇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부침(浮沈)은 더욱 격렬하다. 65년 1백대 기업 중 지금도 1백대 자리를 지키는 회사는 10여개에 불과하다. 40여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97년 이후만 보더라도 30대 그룹 중 절반이 부도를 내거나 금융지원의 ‘인공호흡기’에 매달려 있다. 과거에 위기를 잘 넘긴 경험이 있다고 해서 앞으로도 넘길 수 있다고는 아무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기업의 세계다.

배인준 <논설위원>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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