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31)

입력 1999-02-04 19:28수정 2009-09-24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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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기어를 넣고 출발했다.

문제가 아니라 거리가 어중간혀서 그러요.

그래두 한 이십여분 걸리지 않습니까.

그는 백밀러를 통해서 내쪽을 슬쩍 살폈다.

십분쯤이나 걸릴라나. 요금은 따불로 줘야지라우.

그럽시다.

어쩐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시내 중심가를 통과하면서 나는 사각형으로 반듯반듯하게 지어진 새 건물들이며 예전의 읍내 변두리 논밭이 널려있던 자리쯤에 높직이 서있는 고층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았다. 갈뫼는 예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까. 그러나 나는 운전기사에게 묻지 못한다. 매끈한 시멘트 도로는 시내 외곽으로 죽 벋어 나가고 한길 가운데로 차선이 분명한 이차선이었다. 승용차며 화물트럭이 부산하게 오가고 있었다. 계곡 쪽에는 아직도 물은 흐르고 있는지. 야광 페인트를 바른 기둥과 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논틀 밭틀이 있고 과수원이 있던 언덕에는 새마을 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다리가 그대로 있다! 헌데 모양이 달라진 것같다. 꽃봉오리 형상으로 다듬은 얌채처럼 깔끔한 난간 돌기둥이 보였다. 택시는 산자락 비좁은 길이 아닌 밋밋한 둔덕길을 잽싸게 돌아 들었다. 첫 어귀에 나무 기둥이 보이고 그 위에 현판처럼 걸어놓은 널판자에 검은 글씨로 ‘갈뫼 가든’이라는 글자가 먼저 보였다. 산자락의 오른 편에 있던 과수원들은 없어지고 울긋불긋한 지붕의 주택 단지가 생겨났고 간판이 몇 개 더 보인다. 통나무 주택이며 별장 모양의 테라스와 통창을 낸 하얀 집도 있었고 지붕이 묘하게 샛노란 초가집도 있었다. 승용차들이 곳곳에 서있고 지금 내가 타고 가는 택시 앞에도 검은 색 자가용이 서행을 하고 있다. 차창으로 앞자리에 나란히 앉은 남녀의 뒤통수가 보였다.

왼편으로 과수원이 보였지만 절반쯤은 없어져 버렸다. ‘전통찻집 토담’이란 글자가 보이고 옛날 탱자울이 있던 교감 선생네 본채는 그 건물에 가리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차에서 내려 언덕 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토담 찻집 앞을 지나면서 안을 보니 손님들이 몇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거기까지가 시멘트로 덮은 새마을 도로였고 예전 오솔길은 그 집 뒤에서부터 그대로 남아 있었다. 탱자 울타리가 여전히 새파란 그 집이 보였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그 길로 아끼듯이 다가섰다. 집채에 매인 누렁이가 꼬리를 흔들면서도 컹컹 짖는다. 펌프가 있던 자리에는 상수도가 보였고 집은 옛날 그대로의 귀틀마루를 길게 붙인 남도식의 일자 기와집이었다. 인기척이 없는 채로 마당은 비어 있었다. 나는 마당가에 서서 기웃거렸다.

누구를 찾소?

뜻밖에도 뒷전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나는 놀라서 얼른 돌아섰다. 거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렇지만 차츰 이지러지고 닳아가는 집안의 살림도구 같이 그 얼굴은 변했다. 그네는 아무래도 미심쩍은지 눈을 사르라니 뜨고 나의 아래 위를 찬찬히 살폈다. 교감 선생의 부인인 순천댁이 거기 서있다. 나는 절을 꾸뻑 한다.

사모님 안녕하셨습니까.

누구시게라오? 알듯알듯 하면서 모르것네.

저어…고시공부 왔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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