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南北 민간교류]피해실태

  • 입력 1999년 1월 3일 20시 34분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민간 차원에서의 남북교류 협력사업이 크게 늘면서 대북 중개인(브로커)들의 활동이 어느 때보다 왕성하다. 이들은 투자에서 이산가족 상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남북을 연결하고 있다. 남북이 아직 정치적으로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상호 교류와 소통을 가능케 하는 채널이 돼 뛰고 있는 것. 그러나 역작용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활동이 음지에서 이뤄지는데다 중개인들도 능력보다 의욕이 앞서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고의적인 기만까지 서슴지 않아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에서 보듯이 국내정치에 이용당할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남북관계를 긴장과 위기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 브로커들의 활동과 양태를 파헤쳐보고 대응책을 알아본다.》

★피해 실태★

대북교역 사업을 하려는 국내 중소기업과 개인투자자들을 상대로 한 대북 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리면서 피해사례가 늘고 있다.

중소업체 K사는 지난해 여름 북한 방문 초청장을 받아달라는 조건으로 중국 옌볜지역의 조선족 대북 브로커에게 20만달러(약 2억4천만원)를 줬다. 그러나 이 브로커는 몇차례 추가비용을 요구하더니 10월 들어서는 연락마저 끊고 종적을 감춰 버렸다.

대북 브로커에게 당한 업체는 K사만이 아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조은호북한실과장은 “대북거래 업체는 최소한 한번씩은 이런 일을 당한다”고 토로한다.

재벌그룹인 K사는 97년에 대북 사업가 김모씨를 통해 생산설비를 북한에 반출해 현지에서 생산하는 임가공사업을 하려다 곤욕을 치렀다. 실제 임가공된 물품을 받아보니 상품의 질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 K사는 기술지도반을 보내겠다고 북한에 타진했으나 북한측은 “우리의 거래 상대는 김씨”라며 거절했다. 결국 1백만달러가 넘는 돈을 투자했던 K사는 큰 피해를 봤다. 대북사업체인 ㈜아이엠알아이의 유완영(兪琓寧)사장은 “브로커중에는 같은 물품을 갖고 여러 업체와 중복 계약을 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말했다.

사업추진과정에서 이익이 제대로 나지 않으면 중간에 손을 떼버리는 바람에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S사는 97년 4월 재미교포 김모씨로부터 “나진선봉 지역에 투자조사단을 데리고 가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업체당 참가비 1천달러씩을 받고 1백개 업체를 모았다. 그러나 중개인 김씨가 갑자기 손을 떼버리는 바람에 방북은 무산됐다. S사 관계자는 “김씨가 이익이 남지 않을 것 같아 손을 떼버린 것 같다”며 분개했다.

한 대북교역 전문가는 “90년대 초부터 시작된 대북교역에 참여한 기업 중 3백여개가 쓰러지고 20여개가 살아남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브로커를 통한 거래는 현재 대북 교역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최근 직접 접촉으로 많이 돌아서고 있다. 그동안 쌓아온 북한측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중국 단둥이나 일본 등에서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최근에는 브로커들도 북한에 신규 진출하려는 중소기업이나 개인 사업가쪽으로 공략포인트를 바꾸고 있다. 거래 대상도 공산품 원자재뿐만 아니라 부동산 미술품 등으로 다양화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위험한 ‘게임’을 벌이는 브로커도 많다. 총풍사건 관련 혐의로 구속된 한성기(韓成基)씨 등이 대표적인 경우. 이들 외에도 기업이나 언론사에는 “김정일(金正日)과의 인터뷰를 성사시켜 주겠다”는 제의가 그치지 않는다. 정치 브로커들의 활동무대는 주로 워싱턴. 이들은 미국의 상 하원이나 전직 고위 관리를 이용해 북한측과 거래를 튼 후 이를 남한의 대북교역에 활용한다. 정치 브로커는 잘못될 경우 남북간 정치 군사관계를 순식간에 파국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경제 브로커보다 해악과 위험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대북 브로커에 의한 피해사례가 늘고 있지만 정부는 뾰족한 수가 없다. 한 대기업의 북한팀장은 “신규 업체들로선 브로커를 통하지 않고는 대북 루트를 찾기 힘든데 누가 사기꾼인지를 가려내기가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사전에 자세한 대북 접촉 요령과 주의할 점 등을 상세히 안내해주는 프로그램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이슈추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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