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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11월 30일 19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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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귀국한 뒤에도 그는 아웃사이더였다. 분신처럼 여겼던 SBS스타즈. 그러나 연습장에서도, 경기장에서도 그의 자리는 없었다. 관중석에 올라가, 먼 발치에서 보며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허울 뿐인 총감독 자리. 선수들에게 말 한마디 건넬 수 없고 뒤통수에 구단 관계자의 따가운 눈총을 느껴야하는 ‘따라지 인생’. 이대로 농구를 끝내야 하는가.
그러나 기회는 왔다. 삼성썬더스가 그를 찾았다. 원년 꼴찌, 그리고 지난 시즌 10개팀중 9위. 자신의 처지와 흡사했다. 그래서 첫 만남에서 감독직을 수락했다.
김동광 감독(45). 그는 요즘 마음껏 웃는다. 지난달 19일 SBS전부터 6연승. 28일 SK나이츠에 승리하면서 지난 시즌 세운 팀의 최다연승기록(5연승)을 이미 넘어섰다. 1라운드를 마친 30일 현재 7승2패로 10팀중 선두.
“1라운드에서 5할 승부를 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위로 나선 것은 사실 뜻밖입니다. 덕분에 요즘 축하전화를 받느라 바쁠 정도예요.”
자신을 버린 SBS와의 지난달 19일 첫 만남. 김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다른 날보다 비디오테이프를 두번이나 더봤다. 누구보다도 SBS의 장단점을 잘 아는 그였지만 혹시나 놓친 게 있을까 SBS의 경기장면을 보고 또 봤다.
같은 시간 체육관에선 김현준 전창진 코치가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오늘만은 김감독을 생각해서라도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것이 주문의 전부.
전날까지 1승2패로 부진했던 삼성은 이날 SBS를 11점차로 깼다. 6연승은 바로 이날부터 시작됐다.
송도중고와 고려대 기업은행에서 선수생활을 한 뒤 기업은행과 SBS에서 지도자로 잔 뼈가 굵은 김감독.
우승을 못했다는 이유로 떼밀려나야 했던 감독자리, 그리고 미국에서의 유랑생활. 드렉셀대학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미국의 현대농구는 지금 그에게 더할 나위없는 ‘양식’이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벗어난 때문일까. 그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하다.
〈최화경기자〉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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