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 배심원평결]차몰면 변하는 남편

  • 입력 1998년 11월 25일 19시 22분


▼아내생각

오혜선(36·주부·경기 용인시 역곡동)

전세계 순한 남자들을 모아 놓고 ‘미스터 순돌이’를 뽑는다면 제 남편이 진선미 중에 하나는 할 거라고 자신합니다. 결혼 11년 동안 단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는 남자예요. 아무리 급해도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 남편이 운전대만 잡으면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되는 거예요. 운전은 얌전하게 해요. 하지만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고 말수가 줄어듭니다. 눈에 힘이 들어가고 욕을 할 때도 있어요. 요즘은 노래로 대신하지만.

얼마전에는 남편이 하도 인상을 쓰며 운전하길래 제가 화가 나서 나들이를 취소한 적도 있어요. 그이는 남 탓만 해요. 저도 운전을 하기 때문에 남편 기분을 이해는 해요. ‘목숨 걸고’ 운전하는 사람이 주위에 많은 게 현실입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가족을 끔찍이 위하는 그이로서도 화가 나는 게 당연하고, 욕이나 노래로 스트레스도 풀어야 하겠죠. 이런 면에서 “사회가 내 성격을 버려놨다”는 남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한 통속으로 행동하지 말았으면 해요. 한발자국 옆으로 비켜서서 “저 사람이 바쁜 일이 있나보지”하고 허허 웃는 ‘큰 사람의 여유’를 보여줄 수는 없을까요?

▼남편생각

유기조(38·에버랜드 판촉팀 과장)

82년 군복무중에 아내를 만났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던 중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나 “불쌍한 군인에게 편지 좀 해 달라”며 접근했고 5년 뒤 결혼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 아들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이 세상 전부와도 바꿀 수 없는 보물입니다. 둘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습니다. 말뿐이라고요? 가족을 차에 태우고 운전하다 보면 이런 각오를 되새기게 해주는 상황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위협적으로 뒤에 바짝 붙어 상향등을 번쩍이는 화물차, 코앞으로 끼어들어 급정거하는 택시, 다른 차에 스칠듯이 곡예운전을 하며 요리조리 빠져다니는 속도광(狂) 등.

이럴 때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가족의 안전을 걱정합니다. 사고는 순간이거든요. 혈압이 오르고 욕이 절로 나와요. 공자처럼 초연하게 운전을 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어 곧 포기했어요.

대신 화가 날 때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요. 그래도 아내는 썩 기분이 좋은 것 같지 않아요. ‘노래〓욕’으로 생각하나 봐요. ‘노래’를 ‘보약’으로 생각해 줬으면 합니다. 노래마저 안 하면 운전할 때마다 수명이 10년씩 줄어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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