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규민/시티폰과 실리콘겔

  • 입력 1998년 11월 11일 19시 37분


성형수술의 역사는 의외로 길다. 기원전 6세기에 인도를 중심으로 코를 예쁘게 세우는 수술이 유행했고 기원전 3세기쯤에는 여성의 눈을 크게 만드는 수술도 했다. 당시는 마취기술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맨살을 째는 고통도 극복했다는 얘기다. 과학기술의 진보와 함께 성형수술의 범위는 더욱 확대됐지만 부작용도 심화됐다.

▼여성 유방확대 삽입물을 발명했던 미국 다우코닝사의 파산신청은 충격적이다. 64년 실리콘 겔이 처음 인체삽입용으로 개발됐을 때 의료계는 마법의 물질이 탄생했다고 환호했다. 촉감이 ‘천연’에 못지않게 좋은데다 영구적으로 상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 후 미국에서만 2백만명이 멋진 가슴을 갖기 위해 실리콘 삽입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90년대 초반부터 살이 썩고 관절에 염증이 생기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다우코닝은 파산의 길에 들어섰다.

▼이 거대한 다국적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는 무려 17만명. 이 수치는 나중에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흡연피해자들의 소송에서 기록이 깨지기는 했지만 역사에 남을 만한 규모다. 작년 8월 법원의 1차 평결에서 패소한 다우측은 지난 8월 소송피해자 전체를 대상으로 32억달러를 지급키로 합의했다. 그리고 지난주 그 부담을 못견뎌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사안은 다르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시티폰기본료 환불운동이 그것이다. 통화도 제대로 안되면서 매달 기본요금을 거두는데 대한 반발이다.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이번 운동의 대상은 14만명에 이른다. 소비자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기업들은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규민 논설위원〉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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