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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11월 4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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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기구한 삶이다. 본명 권희로(權嬉老). 두살때 아버지를 잃는다. 다섯살때 어머니가 재혼한다. 의붓아버지의 성(姓)을 따라 김희로가 된다. 의붓아버지는 구박한다. 열세살에 가출한다. 일본사회는 천대한다. 형무소를 들락거리며 젊음을 보낸다. 결혼에도, 사업에도 계속 실패한다. 야쿠자한테서도 돈을 빌린다. 빚독촉을 하던 야쿠자가 욕을 한다. “조센진, 이 더러운 돼지새끼.”
▼그는 폭발한다. 권총을 쏘아 야쿠자 2명을 죽인다. 여관으로 달아나 숙박객 13명을 인질로 잡고 ‘차별시정’을 외치며 88시간 동안 농성하다 붙잡힌다. 68년2월20일, 그의 나이 40이었다. 여관의 여자주인은 그가 인질들을 따뜻하고 진실하게 대했다고 증언한다. 여자주인은 그가 오면 돌려주겠다며 그의 시계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농성현장을 취재했던 아사히신문 사회부기자는 훗날 일본총리가 됐다.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다.
▼그는 일본에서 최장기 복역 기록을 세우고 있다. 무기수도 10년이면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으나 그는 제외됐다. 복역 25년인 93년에는 대대적인 사면복권의 계기가 된 황태자 결혼식이 있었고 호소카와총리가 취임했지만 그는 풀려나지 않았다. 10만명이 서명한 한국측의 석방탄원도 효과가 없다. 일본의 법에는 정녕 눈물도 없는가.
이낙연<논설위원〉naky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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