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 하지만 우리에겐 그저 ‘고독의 계절’일 뿐입니다. 한때 우린 직장에서 인정도 받았지요. 하지만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듯 정신없이 일하던 동료도, 일을 잘 했다고 칭찬해 주시던 자애로운 상사도 한분두분 떠났습니다. 공허한 직장에서 젊은이들의 눈치나 살피는 지금의 우리네 신세가 처량하고 허무합니다. 평생 직장에서 쉬지 않고 일하던 때가 먼 과거의 일이 되고 정년을 보장받을 수 없는 현실에 순응해야 하는가 봅니다. 회상하면 84년과 90년 서울 남동쪽 홍수피해 때 10여일동안 밤잠을 설치며 비상근무하고 88년 서울올림픽 때 코피를 쏟으며 일하던 우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지난 일입니다. 형님. 우리가 정상에 있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욕심이겠지요. 이젠 마음을 비웁시다. 그리고 총명하고 재주있는 청년들에게 주연의 자리를 양보하고 무대뒤에서 조연의 신분으로 만족합시다. 그래도 관객들은 우리를 기억해줄 것입니다.
김임수(서울 강남구 대치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