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편지]김임수/『公僕29년 누군가 기억할겁니다』

  • 입력 1998년 10월 28일 19시 13분


형님. 어떻게 지내십니까.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 살면서도 너무 격조했습니다. 형님이 29년간 일하던 직장을 떠날 때는 하얀 감꽃이 후드득 떨어지던 여름이었는데 벌써 가을입니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 하지만 우리에겐 그저 ‘고독의 계절’일 뿐입니다. 한때 우린 직장에서 인정도 받았지요. 하지만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듯 정신없이 일하던 동료도, 일을 잘 했다고 칭찬해 주시던 자애로운 상사도 한분두분 떠났습니다. 공허한 직장에서 젊은이들의 눈치나 살피는 지금의 우리네 신세가 처량하고 허무합니다. 평생 직장에서 쉬지 않고 일하던 때가 먼 과거의 일이 되고 정년을 보장받을 수 없는 현실에 순응해야 하는가 봅니다. 회상하면 84년과 90년 서울 남동쪽 홍수피해 때 10여일동안 밤잠을 설치며 비상근무하고 88년 서울올림픽 때 코피를 쏟으며 일하던 우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지난 일입니다. 형님. 우리가 정상에 있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욕심이겠지요. 이젠 마음을 비웁시다. 그리고 총명하고 재주있는 청년들에게 주연의 자리를 양보하고 무대뒤에서 조연의 신분으로 만족합시다. 그래도 관객들은 우리를 기억해줄 것입니다.

김임수(서울 강남구 대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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