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양기대/정치권 不信 키운 「총풍」

  • 입력 1998년 10월 27일 19시 29분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과 관련, 정치권은 국가안위보다 정파적 이해를 앞세우는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지적이 많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사건 수사과정에서 실체적 진실 규명에 협조하기보다는 정략적 차원에서 과잉반응해 정치권에 대한 불신만 키웠다는 중론이다.

특히 지나친 정치공방으로 북측에 판문점 무력시위를 요청한 이 사건의 본질이 희석되게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여당은 그동안 야당을 몰아붙일 수 있는 호재를 만난 듯 시종일관 정치공세로 일관했다. 수사가 진행중인데도 마치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배후인물로 드러난 것처럼 분위기를 잡아가며 퇴진 운운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한나라당 역시 진상규명을 통한 결백의 입증보다는 야당파괴와 ‘이회창죽이기’라고 단정, 격렬한 대여(對與)투쟁을 전개해 정국을 필요이상으로 경색시킨 측면이 있다. 이 과정에서 아직 확인되지 않은 고문조작설을 집중적으로 제기한 점도 책임있는 공당의 자세로 보기 어렵다.

한나라당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후에도 여전히 ‘고문으로 짜맞춘 대국민 기만극’이라며 사건 자체를 부정, 국민을 혼란케 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여야는 국민에 대한 사과는 한마디도 않고 수사결과를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해석, 여전히 서로 헐뜯기에 여념이 없다.

여당은 이회창총재의 사과와 철저한 배후수사를, 한나라당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사과와 안기부장의 파면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을 편안하게 해야할 정치권이 오히려 국민의 혼란을 부채질하고 나아가 실체적 진실마저도 ‘주장’으로 비쳐지게 하는 정치공방에만 힘을 쏟는 굴절된 모습이 안타깝다.

양기대<정치부>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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