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로리타」,12세소녀와 의붓아버지의 사랑

  • 입력 1998년 10월 22일 19시 42분


“애칭은 로. 키는 1백45㎝… 내 인생의 빛, 내 자극의 불꽃, 내 죄악, 내 영혼, 로리타.”

10대 소녀에 대한 중년남자의 고백으로 시작하는 영화 ‘로리타’.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찬사와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외설이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았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원작의 영화 ‘로리타’가 드디어 24일 국내 첫선을 보인다. 원래 소설은 36살의 남자와 12살짜리 의붓딸과의 ‘치명적 사랑’을 그린 것. 한국 수입사인 율가필름은 47살의 대학교수와 열여덟살의 양녀로 이를 순화시켰다.

10대 시절 사랑했던 소녀를 잃은 험버트(제레미 아이언스 분)는 시골마을에서 첫사랑을 닮은 로리타(도미니크 스웨인)를 보자마자 정신없이 빠져든다. 로리타와 함께 있기 위해 로리타 엄마과 결혼. ‘비밀’을 알게된 아내가 죽자 로리타와 정욕의, 낙원의, 그러나 지옥의 불길이 번지고 있는 곳으로의 여행….

‘로리타’가 53년 나보코프의 펜끝을 떠난 이후 끝없는 논란에 오른 것은 도덕과 윤리의 잣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고된 삶에 지친 현대 남성들이 자신의 경쟁상대로 떠오른 비슷한 연배의 여성 대신, 어리고 단순한 소녀에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소녀에 대한 중년남자들의 성도착증세를 일컫는 ‘로리타 신드롬’, 어린이 성희롱 취미라는 뜻의 ‘페도필(Pedophile)’이란 말도 생겨났다. 일본의 ‘원조교제’, 우리나라의 ‘영계’선호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섹시함과 건강미를 갖춘 늙지않는 여자, 로리타는 세기말 인류의 우상이기도 하다. 이같은 추악한 인간 본성을 노출시킨 탓에 ‘로리타’는 오랫동안 금단의 목록에 올라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일 ‘로리타’를 중년의 변태적 애정행각으로만 본다면 이 작품의 절반 이상을 놓칠 수도 있다.

원작자가 표현한 로리타는 리얼리티(Reality)의 다른 이름이다. 험버트가 처절하리만치 매달려도 결코 사랑을 주지 않는 ‘작은 마녀’로리타는 작가가 끝내 붙잡지 못하는 실재(리얼리티)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통해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옥’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다. 사랑에 있어서만은 상대를 덜 사랑하는 사람, 또는 사랑하는 척 하는 사람이 절대권력을 휘두를 수 있음을 영화는 비웃듯 드러낸다.

‘플래시댄스’ ‘나인 하프 위크’ ‘위험한 정사’ 등을 감독한 애드리안 라인은 ‘로리타’도 CF적인 감각적 영상과 현란한 색채로 영화를 포장했다. 로리타의 몸을 애무하듯 훑는 카메라, 우유와 딸기 아이스크림까지 관능적 장치로 활용한 도발적 연출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스타일에 치중한 바로 그 점때문에 이 영화는 국내외 평론가들로부터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영화의 작품성과 완성도로 ‘로리타’를 대하든지, 영상의 아름다움에 빠지거나 그 안에 담긴 현대문명의 코드를 읽든지는 순전히 관객에게 달려 있다.

〈김순덕기자〉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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