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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10월 22일 1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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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먼저 교내서클인 국제 펜팔부에 든 것은 조국이었다. 그의 꿈이 세계로 뻗어나가 남아의 기상을 만방에 펼치는 것이니만큼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승주는 좀 다른 목적으로 펜팔부에 가입했다. 여학교의 펜팔 부원들와 만날 기대 때문이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펜팔부라고 하면 영어를 잘 하는 지적인 여학생과 외국에 호기심이 많은 멋쟁이 여학생들로 만발한 꽃밭이리라 싶었다.
두환과 펜팔은 여러 가지로 어울리지 않았다. 펜팔부가 두환의 관심을 끈 것은 넓은 세상을 향한 야망도 아니고 여학생도 아닌, 서클룸이었다. 화장실에서 숨어 피우던 담배를 펜팔부 방에 앉아 눈치 안 보고 피울 수 있다는 데 두환은 솔깃했다. 영어로 편지를 써야 하는 일이 꺼림직했지만 승주는 그 문제는 걱정할 것 없다고 말했다. 자신도 그렇게 할 작정인데 형준이, 즉 내가 다 알아서 할 거라는 얘기였다.
나는 그들의 기대를 한마디로 배신했다. 딱히 펜팔부가 싫어서는 아니었다. 그들이 무더기로 가입했기 때문이었다. 남들도 다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 것이 나의 신조였다. 나는 이 기회에 그들이 내가 자기들과 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들이 기저귀에 방귀를 연발로 쏘아가며 낑낑 걸음마를 떼놓을 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당면과제 해결이나 운동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잡지책 귀퉁이를 빨다가 잠이 들곤 했다. 책을 빠는 것이 버릇이다보니 독서백편 의자현이라는 말씀대로, 다섯 살 무렵에는 눈치로 한글 몇 글자를 터득하게 되었다. 어느날 아버지가 읽고 있는 신문에 아는 글자가 있어서 큰소리로 읽었는데, 마침 그것은 정치면이었다. 그 이후 내게는 다섯 살에 신문 정치면을 읽은 신동이라는 무거운 짐이 지워졌다.
국민학교 때의 어느 명절로 기억된다. 친척들이 모여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자리에서 나는 고등학생이 푸는 ‘장학퀴즈’ 문제 중 반 이상을 맞추었다. 객관식 문제가 유난히 많았던 것이다. 친척들은 내가 신동이 아니라 실망했더니 수재였던 모양이라고 감탄했다.
나는 내 정체가 알려질까 두려웠다. 늘 책을 끼고 다녀서 책벌레라는 별명을 얻어내는 데에는 겨우 성공했지만 그 누구와도 깊이 얘기하기를 꺼려했다. 일부러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고 다녀 선병질에다 괴팍하게 보이기를 원했다. 또한 남이 못 들어본 아프리카 오지의 나라, 남이 듣도 보도 못한 길다란 이름의 15세기 학자, 남이 듣고도 모르는 이상한 발음의 멸종 조류, 남이 관심있을리 없는 소수부족 인디언들의 속담…그런 것들을 시시콜콜 알아냄으로써만 나의 천재성에 대한 암시를 줄 수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무조건 남과는 달라야 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나도 펜팔부에 가입하고 말았다. 소희 때문이었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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