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완배/관공서의 「民怨서류」

  • 입력 1998년 10월 8일 19시 04분


인원감축 바람이 몰아치는 공무원 사회에서도 “일은 많은데 사람이 없다”는 아우성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머릿수 타령만 할 일은 아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업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 공무원의 업무중 47%가 규제업무라는 학자들의 지적도 간과해선 안될 것 같다. 쓸데없는 규제만 과감히 없애도 공무원 일이 줄고 국민까지 편해지는 일거양득이 얼마든지 생길 것이다.

관공서 민원서류 분야를 보자. 새 자동차 등록에 완성검사증 제작증 책임보험영수증 등 7가지 서류가 요구된다. 미국에서는 자동차보험 영수증 하나 뿐이다. 미국의 행정이 우리보다 낮은 수준이어서인가. 우리나라의 담당 실무자들조차 “주민등록등본 완성검사증 제작증은 없애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2.5t 소형트럭이면 여기에 자가용사용신고서 사업자등록사본에다 차고지약도 토지등기부등본 건축물관리대장이 추가된다. 미국에서는 역시 사업자등록증 하나만 추가된다. 자동차 등록사업소 직원은 “사실상 필요한 서류는 사업자등록증사본 하나 뿐”이라고 말한다.

폐차처리 역시 마찬가지다. 인감증명서를 떼어 폐차장에서 폐차신고를 마친 뒤 구청에 가서 폐차 인수증을 납부해야 끝난다. 미국에서는 어떨까. 폐차장에 가서 차량소유증만 제출하면 된다.

공무원조차 사용처를 모르고 발급하는 민원서류가 많다. ‘가금 등 의뢰검사’ ‘지방이주사실 확인’ ‘보호시설 미성년자 고아 후견인지정증명’ ‘종묘살포신고’ ‘담배소비세납세 담보확인서발급신청’ 등등….

물론 필요한 시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도 바꾸지 않고 거기에 얽매이다 민원(民願)서류는 또다른 ‘민원(民怨)’과 국가적 낭비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완배<사회부>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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