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 배심원평결]남편 보약먹이기

입력 1998-09-16 19:03수정 2009-09-25 01:37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아내생각▼

이봉래(30·주부·경기 용인시 신갈리)

고향인 청주에서 시어머니와 같은 계원(契員)이던 친정어머니의 권유로 남편을 소개받아 94년초 결혼했어요. 결혼 직후 친정어머니가 “류서방에게 먹이라”며 보약 한재를 지어주셨습니다. 친정은 철따라 보약을 먹는 게 생활화돼 있거든요. 지난 가을에는 선물로 받은 녹용을 달여 먹였죠. 남편은 기관지가 좋지않은 전형적인 ‘태음인’이에요. 하지만 지난 겨울은 감기치레 한번없이 잘 넘겼어요.

올해도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오네요. ‘보약의 계절’이에요. 그래서얼마전남편에게말을 꺼냈어요. “가을도 됐는데 지난해처럼 보약 한재 지을까요?”그런데 남편은 대뜸 “요즘같이 힘든 때 보약은 무슨 보약”이냐며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거예요.

요즘 저희 아파트 주부들 사이에 보약을 짓는 게 붐이에요. “IMF시대에는 남편 몸이 성한 게 최고”라는 거죠. 한의사인 사촌형부 말도 올해초 조금 뜸했던 보약손님이 다시 많아졌대요. 저도 보약이 엄청난 효과를 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녜요. 하지만 보약의 ‘짓는 정성, 먹는 정성’은 믿는 편이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IMF시대. 보약 한재로 도움이 된다면 뭘 더 바라겠어요.

▼남편생각▼

류인택(34·㈜풀무원 식품기획실 과장)

결혼전까지 한번도 보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어요. 결혼후 장모님이 지어주신 ‘사위 사랑 보약’이 처음이었죠. 제가 워낙 ‘좋다는 음식’을 남겨두는 성격이 아닙니다. 게다가 ‘의욕적으로 결혼생활을 하라’는 뜻으로 장모님이 지어주신 보약 아닙니까. 열심히 챙겨 먹었죠.

두번째로 보약을 먹은 건 지난해 가을입니다. 캐나다에 사는 이모가 귀국선물로 녹용을 사다주셨거든요. 아내의 사촌형부가 하는 한약방에서 ‘실비(實費)’만 내면 된다길래 달여먹었죠. 하지만 그것 역시 ‘제돈’은 얼마 들지 않는 거였죠. 웬만한 것 한재에 30만∼40만원 하는 보약을 때마다 지어먹을만큼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또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도 다양한 건강보조식품을 생산합니다. 제가 만든 건강식품 대신 따로 한약방에서 보약을 지어먹는다는 것도 왠지 찜찜한 생각이 들더군요.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가짜한약재 문제며 부작용도 신경이 쓰입니다.

피곤해하는 저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아내의 심정.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진 건강에 자신이 있어요. 올 가을부터 보약 대신 아내와 함께 조깅이나 해볼까 합니다.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