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은 뒤 그는 약속이 있다면서 서둘러 돌아가려했다. 그는 휴게소에 차를 세운 뒤 토요일에 도시의 아파트에 가서 자고 일요일 오후에 돌아온다면서 일요일 4시에 바로 이곳에서 보자고 말했다. 나는 가능한 사무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몹시 고통스러웠다. 마치 신발을 잃어버리고 누더기 옷을 입고 상한 호박속에서 기어나온 것 같은 참담한 기분이었다. 막 내린 무대처럼 가설의 게임은 끝나고 몸 안에서 빛나던 불빛은 꺼져버렸다. 더 나쁜 사람이 더 잘 사랑에 빠지고 더 끝까지 사랑한다는 말이 맞는 지도 몰랐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호경이 낮에 전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수와는 아침과 밤에 잠들기 전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산속 집에 전화를 걸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의 음성은 기대에 가득찼다.
규였다.
‘잘 들어 갔어요?'
얼른 무슨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몇 년 동안이나 못 본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를 갑자기 듣는 것 같았다. 터무니 없는 일이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네 이제 막 들어 온 길이에요.’
‘오래 걸렸네요.’
‘휴게소에서 차를 마시고 들어왔어요.’
‘누구와?’
그가 너무 서둘러 물었기 때문에 나는 약간 웃었다.
‘휴게소 여자와요.’
‘…… 약속 장소로 가는 중인데, 궁금해져서 공중전화가 보이기에 걸었어요. 거리에 서서 이렇게 전화를 거는 것, 굉장히 오랫만이야.’
‘……’
‘오후 시간 잘 지내요. 당신은 너무 우울해. 하긴…… 늘 숲속 집에 혼자 있으니, 흡사 새의 마음같을 거야.’
그는 꽤 친절한 사람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지고 눈 앞이 환해졌다. ‘고마와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주 심심하면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좋을 텐데, 편지를 쓰거나. 수신인은 마을의 우체국장으로하고.’
‘그렇군요.’
마침내 나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는 그제서야 만족한 듯 전화를 끊겠다고 했다.
‘잘 다녀오세요.’
말을 한 뒤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그의 아내처럼 말을 한 것이었다.
그 주의 일요일에 호경은 집에 있었다. 서점을 연지 3 개월만에 세 번째로 가진 휴일이었다. 호경과 단 둘이 집에 있으면 우리 사이엔 너무 많이 싸우며 자란 이복남매처럼 무덤덤하면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적의와 혐오가 있었다. 호경은 아침도 먹지 않고 내처 잠을 잤다. 오후 1시에 일어난 호경은 런닝 바람으로 점심을 먹은 뒤 바다로 낚시를 가자고 했다. 나는 더워서 싫다고 말하고 웃옷을 입으라고 핀잔을 주었다. 호경은 그러면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의 독창회에 가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서점에서도 티켓을 팔았다고 했다.
<글: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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