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구름모자 벗기 게임(46)

  • 입력 1998년 9월 9일 19시 28분


제2장 달의 잠행 (22)

―나를 보아요. 우린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할 것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행위가 부도덕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서로 알고 의식하고 나면 그런 문제들이 좀은 완화되지. 밝은 곳에서 내 것을 보고 당신도 나에게 보여주는 거요.

나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특이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안되는 거지?

나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수를 낳을 때의 날카로운 기억이 떠올랐다. 회음을 절개했고 그러고도 부족해 의사의 손이, 그 날카로운 손가락이 자궁까지 들어와 아이를 잡기 위해 휘저었었다. 나는 나를 결정적으로 손상시키고 수를 얻었다. 그런 순간에도 수와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분명하게 들었다.

―… 글쎄요. 그런 적이 없어요. 내 몸을 보면 당신은 내가 잊은 것까지도 다 읽게 될 거에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여자의 몸은 남자와 달리 일어난 모든 일을 생생하게 기록하니까요. 그리고 그건 오직 나만의 것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읽히고 싶지 않아요.

―우린 사랑하려는 게 아니라 게임을 하는 거요. 이런 땐 아무것도 가리지 않는 편이 나아. 용기를 내봐요.

나는 그 말에 한편으로는 동의했다. 여기에는 어떤 환상이나 미화도 필요 없었다. 수줍음 조차도 룰을 어지럽힐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다음에요. 그래야 한다면 좀 익숙해진 다음에 할게요.

그는 창가로 다가가 짙은 색의 커튼을 쳤다. 방안은 어둑해졌다. 그는 냉장고를 열고 캔 맥주를 두 개 꺼냈다.

―좋아요. 지금부터 당신 몸이 나를 기록하게 되는 것에 대해 축하합시다.

우리는 말없이 맥주를 마셨다. 나는 전에 비해 살이 많이 부풀어올라 있었다. 몇 년 동안 너무 많은 낮잠을 잤기 때문이었다. 나는 옷을 벗고 섹스를 하게 될 것에 대한 불안 때문에 맥주를 빠르게 마셨다. 냉방된 방안에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자 추워졌다. 나의 벗은 몸은 속옷에 눌린 자국들이 나 있고, 약간은 우스꽝스러울 것이었다.

그가 나를 끌어안았다. 낯선 몸이 처음 안을 때의 기분은 몹시 섬세하고 자극적인 것이다. 그의 몸도 나처럼 차가웠고 몸의 잔털이 곤두서 있었다. 잔털이 먼저 스치고, 소름이 돋은 긴장된 피부가 건드려지고 내 키가 그의 목께에 닿는 것을 느끼고, 두 사람의 목이 이쪽과 저쪽으로 감기고 부딪치며 가볍게 흥분하고 그리고 짧게 입술을 부딪치고, 저절로 열리는 입술의 틈으로 입술들이 틈입하고, 그리고 체온과 맛이 다른 혀가 입속으로 와락 넘나들고, 그리고 팔이 얽히고, 기우뚱 기울어지며 서로의 팔속으로 좀더 다가서고….

그것이 무엇이었던가? 분명 단순한 통증이 아닌 존재의 뿌리를 뒤흔든 감각의 통합…. 나는 유체 이탈된 영혼처럼 나의 내부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결합되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너무나 생생하게 느끼며 동시에 너무나 생생하게 의식했던 것이다. 우리는 두 번의 섹스를 나눈 뒤 똑같이 잠이 들어버렸다. ‘초원의 빛’이라는 모텔에서 나왔을 때, 이미 어두워진 하늘 끝에서 밤바람이 불어왔다. 처음으로 머리끝까지 피가 운반되는 신선한 생기가 몰려왔다.

<글: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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