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반미 테러와 문명권 충돌

  • 입력 1998년 8월 10일 19시 27분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대사관에 5분 간격으로 폭탄테러가 자행돼 2백9명이 사망하고 4천9백여명이 부상했다. 사건현장에서 1.5㎞ 떨어진 건물이 흔들렸다니 가히 슈퍼테러다. 사건 직후 ‘거사’를 주장한 ‘이슬람교성역 해방군’이 발표한 7개항의 요구는 표적이 미국임을 분명히 한 내용이다. 전문가들이 더 혐의를 두고 있는 국제이슬람교전선 지도자 라덴도 ‘미국의 적’임을 자처해 왔다.

▼이슬람교단체의 반미테러는 종교적 이질감에 뿌리를 둔 증오심의 산물이다. 종교 다음으로 이질감의 원천이 알파벳이다. 문명충돌이라는 새 국제정치 패러다임을 내놓은 헌팅턴은 이 두 인자(因子)로 문명권을 구분했다. 국가나 정치이념보다도 문명권 개념이 국제질서의 바탕이라는 것이다. 냉전시대 “너는 어느 편이냐”는 물음이 “너의 본질이 어떤 것이냐”로 전환된다면 훨씬 더 심각한 갈등을 예고한다.

▼테러가 반인류 범죄라는 규탄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반작용이 반미테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레이건 행정부 이후 미국의 정치군사적 대국주의 징후는 별반 없지만 통상압력이 문제다. 우리 정부 관용차를 미국산으로 사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보도도 그런 맥락이다. 냉전 이후 유일 초강국의 간접적 ‘힘의 횡포’로 보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

▼헌팅턴이 미―서구 연합을 주창한 것은 팍스 앵글로색슨이라 볼 수 있다. 그 중 서구정신사의 발상지인 그리스조차 정교회를 믿는다는 이유로 배제한 것은 지나친 ‘적과 동지’의 구분법이다. 미국 정부 책임자들은 이번 테러범을 끝까지 추적, 응징하겠다고 밝혔다. 테러에는 그래야 마땅하다. 그와 함께 미국내 보수화와 비서구권에 대한 불관용의 문제점도 점검해보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김재홍<논설위원>nieman96@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