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당내부거래 뿌리뽑기

  • 입력 1998년 7월 30일 19시 32분


5대 재벌의 부당내부거래 실체가 드러났다. 짐작은 해왔지만 그 규모가 4조원을 넘고 그것도 대부분 적자상태의 한계기업을 살리기 위해 이뤄졌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우량계열사의 막대한 자금이 부실기업 살리기에 쏟아 부어지는 한 경제회복은 요원하다. 그런 차원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단속은 시의적절하다.

재벌의 부당내부거래가 빚어낸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금수급의 왜곡이라 할 수 있다. 시중 산업자금의 태반을 끌어다 쓴 재벌들이 그 돈을 부당한 방법으로 다른 계열사에 공급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으로 고전하고 문을 닫아야 했던가. 이런 판국에 중소기업이 육성되기를 바라는 자체가 무리였는지 모른다. 은행돈을 대출받을 때 과연 재벌들이 사용목적을 부실계열사 지원용이라고 솔직히 밝혔을까. 은행의 대출자금 관리방식도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다.

부당내부거래는 특히 경제정의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 온갖 편법으로 부실계열사를 살리는 지원이 계속되면 재벌회사들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경쟁상태에 있는 같은 업종의 중소기업만 지쳐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자유시장경제는 동일한 조건을 바탕으로 한 공정경쟁이 전제되어야만 성립되고 발전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에 드러난 재벌의 행태는 지탄의 대상이다.

부실계열사에 자금을 공급하면 우량계열사의 경영은 그만큼 악화되게 마련이다. 이때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쪽은 우량계열사에 투자한 주주들이다. 과도한 부당지원때문에 전체 계열사의 경영이 부실해져 재벌이 망하면 이들이 안고 있는 엄청난 부채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간다. 부당내부거래를 지속적으로 단속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이번 발표에 대해 재벌들이 반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물론 부분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겠지만 재벌들이 일단 반성하고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면 모양이 좋았을 것이다. 다만 재벌의 이의제기나 법적 대응에 대해서도 여론재판식 처리는 피해야 한다. 만의 하나 억울한 일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조사결과를 부실기업 퇴출작업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당국의 입장은 옳다. 자본이 잠식되면서까지 우량계열사의 수혈에 의존하는 부실기업을 그대로 놓아 두는 것은 우리 경제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재벌들도 차제에 자생력 없는 부실계열사를 과감하게 도태시켜 내실을 기하는 노력을 실천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국제 경쟁력을 갖춘 주력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재벌에도 이롭다. 이번 단속을 개혁의 촉진제로 받아들일 때 5대재벌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