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합의보다 실천을…

동아일보 입력 1998-07-27 19:34수정 2009-09-25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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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총수들과 경제정책 책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경제현안을 진지하게 논의해 합의를 이뤄낸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당초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다 실패한 빅딜을 기업이 자율적으로 시행키로 한 것이나 임금삭감을 전제로 정리해고를 자제키로 한 부분도 그 자체만 보면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같은 외형적 합의보다 실현가능성이 불확실한 이들 현안에 대해 양측이 얼마나 강한 실천의지를 갖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우선 5대 재벌이 상호지급보증의 완전해소와 평균부채비율 감축을 위해 중간목표를 세우고 실천상황을 기간별로 점검하는 데 동의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기업들의 엄청난 부채 때문에 은행 신뢰도가 떨어져 환란이 왔던 뼈아픈 교훈을 생각할 때 재벌기업들은 지금 당장 곤혹스럽더라도 서둘러 재무구조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기업의 내부자금 지원관행을 강력히 단속키로 한 조치도 같은 맥락에서 옳다.

빅딜의 경우 정부가 밀어붙이기 방식을 포기하고 업계의 자율적 조정에 맡기되 추진을 적극 뒷받침하기로 한 방향은 맞다. 대상업체의 가격 및 교환조건 등 예민한 문제가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가 빅딜의 주조정자를 자처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그러나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빅딜이 가까운 시일 안에 가시적 성과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명분과 방향에 대해서는 양측이 합의했지만 시한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고 보다 상세한 각론도 나오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빅딜은 흐지부지될 일이 아니다. 사업교환에 따른 시너지효과와 기업경쟁력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조속히 추진되는 것이 전체 경제를 위해서도 좋다.

정리해고 회피를 위해 시간분할제(워크 셰어링)를 추진키로 한 부분도 기본적으로는 찬성할 만하다. 그러나 이 문제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워크 셰어링은 근로자의 임금삭감이 전제될 때 가능하다. 근무시간은 줄이되 임금은 깎지 못한다는 기존의 근로자측 주장이 계속되는 한 이 제도는 성사될 수 없다. 그래서 효용성과 실천가능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정리해고를 가급적 자제한다는 재계와 정부의 합의도 원론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정리해고 최소화에 집착한 나머지 구조조정 자체가 왜곡되거나 이뤄지지 않는다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합의된 경제현안 해결과제 추진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형평성과 원칙준수다. 법정신과 사회관행 등 기본원칙에서 벗어나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정부가 할 일은 공정한 심판자이자 독려자로서 원칙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끝까지 실천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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