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갈등탐구]양창순/자기중심서 한발짝 양보하라

  • 입력 1998년 6월 17일 19시 13분


‘처녀가 애를 낳고도 할 말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 입장에서는 전적으로 자신이 옳다는 이야기인데 정신과 의사로서 이 말을 실감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고부갈등으로 찾아온 경우 며느리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나쁜 시어머니가 없는 것 같은데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며느리의 행동이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다. 부부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 중심적이다.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상처받기 쉬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심지어 부모가 싸울 때도 뭔가 자기들이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다가 철이 들면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능력이 자라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생존에 위협을 받으면 방어적이 되면서 감정적으로는 어린 시절로 퇴행하기 쉽다. 자기중심적 생각과 감정으로 중무장한다. 자기 가치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환자들은 처음 입원하면 자기 주장만 하고 남의 말은 절대 안 듣는다. 그러면서도 주위 환자들의 증상은 아주 예민하게 파악해 ‘저 친구 병이 심하니 고쳐주라’고 당부한다. 병이 나으면서 비로소 자기 문제를 인정한다.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기합리화와 자기연민의 감정은 참으로 끈질기고 뿌리깊다. 바로 그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 좀 더 너그러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부부 사이에는 더욱 그렇다. 아마도 그런 포용력만 갖춘다고 해도 이 세상에서 부부 싸움은 현격히 줄어들지 않을까.

양창순<서울백제병원 신경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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