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캠페인]눈 어둡고 귀 어둡고『노인도 빨간불』

  • 입력 1998년 5월 19일 06시 50분


지난달 22일 오전 5시반. 이연심씨(68·여)는 평소처럼 ‘향나무 사거리’로 불리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지검앞 도로변에 멈춰섰다. 새벽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방배동에 있는 교회로 가는 길이었다.

왕복 8차로의 넓은 길. 지하철 2호선 서초역과 이어지는 지하보도를 통해 대법원쪽으로 건너가야 했지만 이씨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너무 힘들어 평소에도 가끔 무단횡단을 했다.

이른 아침이라 지나는 자동차도 드물었다. 마음놓고 길을 건너던 이씨는 도로 한가운데 있는 향나무를 지나자마자 둔탁한 물체에 부딪치는 느낌을 받았다. 택시가 이씨를 들이받은 것. 다행히 좌회전하던 택시가 속도를 많이 줄인 상태여서 이씨는 발목을 다치는데 그쳤다. 이씨는 지금도 “직진 차량이었다면…”하고 생각하다 새삼스레 놀라곤 한다.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24만6천4백52건. 1만1천6백3명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이는 96년에 비해 1천여명 줄어든 것.

그러나 노인 교통사고는 정반대 추세다.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 중 61세 이상 노인은 2천2백10명으로 전체의 17.5%였다. 국내인구 중 노인비율이 10%인 점에 비추어 다른 연령층보다 교통사고 피해율이 훨씬 높다는 얘기다.

지난해 교통사고로 숨진 노인은 96년보다 17명 늘었다. 증가율은 0.8%에 불과하지만 노인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의 교통사고 사망자가 감소, 전체적으로 8.3%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노인 교통사고는 심각한 수준이다.

노인 교통사고의 특징은 길을 걷거나 건너다가 당하는 사고가 대부분이라는 점.

92∼96년의 경우 노인 교통사고 중 77.3%가 보행자 사고였다. 지난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보행중 피해는 38.4%였다.

이처럼 노인 보행사고가 많은 이유는 신체운동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 명지대 금기정교수(교통공학과) 조사에 따르면 녹색 신호시간이 32초인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20대는 평균 22.5초, 70대는 30.1초가 걸린다.

대부분의 운전자가 신호가 바뀌자마자 급하게 지나가는 현실을 감안할 때 노인 보행자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또 노인들은 신체특성상 같은 충격을 받더라도 피해정도가 커지게 마련. 각별한 보호 대상이란 얘기다. 교통과학연구원 김경옥 수석연구원은 “인구 10만명 당 교통사고 사망자가 어린이는 7명인 반면 61세이상 노인은 48명이나 된다”며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교통안전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 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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