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김경달/먼저 간 아들에게…

  • 입력 1998년 5월 13일 19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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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난 요즘 힘이 들 때마다 지갑 속의 네 얼굴을 보며 ‘힘을 다오’라고 속삭여본단다.’

그러나 지갑 속의 그 아들은 지금 세상에 없다.

3년 전 고교1년생이던 외아들 대현군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한 뒤 대기업 중역자리를 내놓고 청소년 폭력예방재단을 만들어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종기(金宗基·52)씨.

8일 어버이날, 김씨는 매년 붉은 카네이션을 달아주던 아들이 떠올라 허전한 가슴을 쓸어내리다 편지를 썼다. 이어 12일 재단 직원이 하이텔 플라자 난 등 PC통신에 6장에 걸친 그의 편지를 올리면서 여러사람의 마음 속에 애틋한 부정(父情)이 번지고 있다.

‘아들아 나를 용서해다오’란 구절로 시작된 편지에는 3년을 한결같이 순간마다 닥쳐오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물씬 배어 있다.

‘닭고기를 좋아했던 너는 닭고기 가게 간판과 함께 살아나고, 유난히 모자를 좋아했던 너는 네 또래의 모자 쓴 학생만 봐도 되살아나고…. 네가 내 생일날 선물한 내의를 입을 때마다 너의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너는 살아난단다.’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어 기다리지만 정작 꿈속에서 아들을 만난 다음 날은 너무도 우울하다는 고백도 이어졌다.

이어 그는 3년 전 여름, 중국출장중에 아들의 자살소식을 접할 만큼 바빴던 자신을 질책했다.

‘나는 세상의 헛된 명예와 돈만을 위해 살아왔구나. 미친 듯 회사일에만 쫓겨 살았지. 네가 힘들어할 때 친구가 되어 주고 위로해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다시는 너처럼 아까운 죽음이 없고, 이 못난 애비처럼 피맺힌 아픔이 없는 좋은 세상’을 기원한 그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갈테니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며 애비를 기다려달라’는 말로 글을 맺었다.

〈김경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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