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하정봉/살아 볼려고 귀순 했는데…

  • 입력 1998년 4월 27일 19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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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말 귀순한 김명숙(金明淑·36·주부·서울 송파구 오금동)씨. 남편(41)과 두자녀 등 네 가족이 함께 사선을 넘은 그는 요즘 병마와 생활고로 차가운 벌판에 홀로 내동댕이쳐진 기분이다.

‘자유’는 쟁취했지만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북한에서나 한국에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 이달초 남편이 간경화증에 걸려 병상에 누운데다 지난주엔 아들(12)마저 간염증상이 있다는 의사의 진단이 떨어졌다.

김씨 가족이 정부로부터 받은 정착금은 2천5백여만원. 실평수 9평짜리 영구임대아파트 보증금을 내고 포장마차도 장만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행복하게 잘 살아보겠다’는 의욕이 넘쳤다.

그러나 남한물정에 어두운 이들 부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벅찬 일이 계속 닥쳐왔다.

“자릿세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 들었습니다. 2천만원의 권리금이 없는 자리를 겨우 찾았다 싶으면 주변 포장마차 상인들이 몰려들어 ‘여기는 우리 구역’이라며 쫓아내더군요.”

결국 두달여를 숨바꼭질하듯 장사하다 본전도 못찾고 포기해야 했다.

그뒤 남편이 공사장인부로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IMF로 일감을 구하지 못하는 날이 늘자 이들 부부는 올초 궁리 끝에 다시 포장마차를 하기로 하고 남은 전재산인 5백만원을 털어 중고트럭과 설비를 사들였다. 그러나 실업자들이 앞다퉈 포장마차를 하는 바람에 경쟁업소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장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기를 쓰고 동분서주하던 남편은 끝내 피곤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가족은 절대로 삶을 포기할 수 없어요. 우리 때문에 모진 고초를 겪고 있을 북녘의 가족을 다시 만날 그날까지는….”

상기된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이던 김씨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하정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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