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출연 연구기관 정비 방향

  • 입력 1998년 4월 21일 19시 24분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정비와 역할정립이 시급한 과제다. 현재 정부출연 연구기관은 모두 58개로 인문사회계가 25개, 과학기술계가 33개다. 80년 이전 17개였던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늘었다. 연구기관이 많다는 것은 어쩌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정부 부처가 많은 연구기관을 거느리고 있는 나라는 드물다. 부처 독점 연구기관이 이렇게 많다 보니 연구영역과 기능의 중복, 연구의 질과 생산성 저하 등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그동안 우리 산업발전과 우수 인력의 사회배출에 공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제 역할을 하지도 못하고 찾지도 못하고 있다. 충실한 연구기관이라기 보다는 주무부처가 미리 틀을 짠 정책을 합리화시키는 데만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는 단기적인 일상업무까지 하청받아 처리한다는 얘기도 있다. 각 부처는 그런 산하연구기관 설립에 지나친 욕심을 냈다. 지금 연구기관 통폐합문제가 절실히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기관의 정비를 다른 정부 산하단체 통폐합과 같은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된다. 당장의 이해타산보다는 국가 장래를 위한 연구 개발의 효율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기능별로 전문화할 것은 더욱 전문화하는 등 필요에 따라서는 연구개발(R&D)투자의 확대가 불가피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구조조정이나 개혁에 앞서 연구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전략과 비전부터 가져야 한다. ‘1부처 1연구기관’이라는 양적 잣대로 획일적 도식적으로 처리해서는 안된다.

연구기관의 합리적 재편을 위한 대안은 현재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현행 부처중심 체제를 유지하면서 운영시스템을 개선하는 방안, 부처를 초월해 연구기능 분야별로 재편하는 방안, 민영화 또는 국공립연구소화하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모두 장단점이 있겠지만, 문제는 어떤 형태든 그 연구 결과가 정책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하고 국가 전체의 지적(知的) 부(富)를 축적할 수 있는 연구기관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지금의 폐쇄적이고 경직된 형태로는 경쟁력과 생산력을 갖춘 연구기관이 될 수 없다.

산하연구기관을 하나라도 잃지 않으려는 각 부처의 경쟁은 치열하다. 자칫 부처 편의주의나 세력다툼 때문에 일을 그르칠 우려도 적지 않다. 국가 경영적인 차원에서 무엇이 지금의 저효율 고비용구조를 혁신하는 길인지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목표와 기능을 명확히 하면서 역할을 최대화할 수 있는 합리적 재편을 모색해야 한다. 단순한 기구축소나 통폐합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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