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노트]고미석/더 고달픈 「소외의 그늘」

  • 입력 1998년 4월 18일 20시 23분


시골 외딴 집에서 부모 잃고 홀로 사는 소년가장. 아이는 늘 TV를 켜놓고 지낸다. 밥먹을 때나 잠잘 때도.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사람목소리 들을 일이 없으므로.

요즘 TV나 신문을 보면 이렇게 가슴아픈 사연이 넘친다. 숨도 제대로 못쉴만큼 아픈 딸 때문에 헤어져 사는 가족도 있다. 엄마는 없는 살림에 간호하느라 애간장이 다 녹아버리고 아빠는 돈벌러 지방행. 병든 누나 때문에 남동생은 친척집을 전전. ‘아빠 보고싶니?’라는 말 한마디에 아홉살 남자아이의 눈에 후두둑 눈물이 돋는다.

슬픈 삶의 정경들. 왜 인생이 뜻대로 안되느냐고 불평하다가도 정신이 번쩍 든다. 참으로 고단한 짐을 진 이웃이 많구나.

중학생처럼 앳돼 보이는 얼굴의 스무살 청년도 그랬다.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도 힘겨워 보였다. 어머니 등에 업혀 대학을 다닌다. 근육이 약해지는 불치병이라던가. 증세가 심해지면 하루가 버겁다. 그냥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한마디를 되새긴다고 했다. ‘누구든 태어난 이유가 있다’고. 그를 보며 ‘삶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을 완전하게 하고 본래부터 없었던 것은 부러워하지 않는 것’이란 말이 생각났다.

마치 태평성대를 만난 것처럼 배두드리며 살던 날은 가고 이제 세상은 어지럽다. 생존만이 지상과제인 듯 살벌한 전쟁터로 변해간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절실한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소외된 이들은 사는 게 더 눈물겹다.

사람 일에는 어긋남이 많다. 여기저기 감춰진 허방. 세상살이의 함정에 언제 빠질지 아무도 모른다.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는 것. 그게 무슨 사랑이냐, 그것은 자신에 대한 집착일 뿐’이라는 구절을 책에서 읽었다. ‘당장 나도 힘든데…’라고 조급증만 내다가 변변한 사람노릇을 외면하는 부끄러움.

서로에게 울이 되는 세상에 살고 싶다.

고미석(생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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