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신문의 역할

  • 입력 1998년 4월 7일 19시 20분


어제는 제42회 신문의 날이었다. 내일은 우리 나라 최초의 일간신문인 ‘매일신문’이 창간된지 1백주년이 되는 날이다. 신문이 일상생활의 한 부분의 되어버린 요즘 우리 일간지의 역사가 1백년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뜻깊다. 하지만 현재 우리 신문을 둘러싼 상황은 연이은 신문관계 기념일을 반가운 마음으로 맞기보다는 신문 스스로에 뼈를 깎는 반성의 시간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신문의 날에 쏟아진 독자들의 신문 비판과 고언(苦言)은 어느 때보다 매서웠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신문은 뭘했느냐’며 나무라는 독자가 있었고, 신문에 ‘밥값을 하라’고 질책하는 학자도 있었다. 오늘의 국가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따질 때 신문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특히 외환위기를 미리 경고하지 못한 잘못은 크다. 그런 뜻에서 신문은 어떤 질책이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신문이 독자의 준엄한 질책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부단한 자기개혁뿐이다. 이 ‘거듭나기’를 위해서는 제2의 국가위기가 다시 오지 않도록,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신문이 본연의 비판 견제 감시기능을 한층 강화해 나가면서 자신에 엄격한 신문이 되어야 한다. 그 비판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말처럼 ‘우정있는 비판’이 되어야 한다. 권력에 대한 ‘비판없는 찬양’으로는 실추된 독자의 신뢰와 애정을 회복할 수 없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21세기를 맞아 나라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도록 신문이 길잡이 역할을 하는 일이다. 개방화 세계화 등 국제사회의 흐름을 바로 읽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야말로 ‘국가위기 타개’에 신문이 동참하는 길이다. 이 목표를 이루려면 신문의 노력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독자의 사랑어린 충고와 채찍질이 필요하다.

〈홍찬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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