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노트]김순덕/『내 아이는 빼고…』

  • 입력 1998년 4월 4일 20시 34분


열다섯살짜리들이 세상이 싫다며 잇따라 자살을 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우선 내 아이가 그 속에 끼여있지 않다는 데 안심을 한 뒤 혹시 나쁜 친구들 때문에 착하고 말잘듣는 내 자식이 비뚜로 나가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그들을 삶의 가치를 모르는, 나약한 아이들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보면서 나는 지난해 음란집단으로 몰린 ‘빨간 마후라’의 10대를 떠올렸다.

그때도 말세라고 개탄하던 어른들이 돌아서서는 ‘빨간 마후라’비디오를 찾았다. 지금 입시위주의 학교교육을 비난하며 대학을 나와야 사람대접 받는 세상이 안되도록 교육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일단 내 아이는 대학을 가야만 한다고 굳게 믿는다. 문제는 당신들의 아이에 있지 내 아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10대의 자살, 가출, 폭력, 임신, 매춘…. 이런 10대 관련 뉴스를 볼때마다 나는 우리사회가 일종의 ‘마녀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배곯고 자라서 ‘식욕 세대’인 어른 대(對) 몸과 감각으로 자신을 주장하고 저항하는, 그래서 ‘성욕 세대’인 10대의 전쟁만이 아니다. 똑똑한 자식을 둔 나와 막가는 문제아를 둔 당신들, 내 자식만을 챙기는 지킬박사와 남의 자식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하이드씨의 두 패가 맞붙어있다.

이 전쟁의 특징은 적과 아군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적이 곧 아군이고, 우리들 자신이다. 어쩌면 우리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나는 괜찮지만 너는 안된다는 식의 비열한 ‘나는 빼고’주의(主義)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맞서 싸워야하는 마녀는 나약하고 충동적이고 음란한 10대가 아니다.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앉아 나만의 반칙을 주장하는 또다른 적군을 몰아내야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제대로 숨을 쉬고 살 수 있다. ‘나는 빼고’가 아니라 우리가, 다 함께.

김순덕<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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