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아름다운 삶…」,흙과 함께 살아온 삶과 사랑

  • 입력 1998년 3월 20일 07시 53분


스물여섯 살의 헬렌이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삶의 맨 밑바닥에 있었다.

헬렌보다 스물한 살 연상이었던 스코트. 그는 혼자였으며 최악이었다. 대학에서 쫓겨나고 가족마저 떠나간 그의 눈빛은 간절히 염원했다. ‘별이 빛나고 움직임이 없는 침묵 속에서 누군가 동반자가 있어 손이 닿을 수 있는 곳, 가까이 있었으면….’

헬렌은 그 고독하고 가라앉은 그의 삶에 파스텔풍의 부드럽고 푸른 색채로 스며들었다.

‘타고난 비순응주의자’로서 미국의 산업주의 체제와 그 문화의 야만성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스코트 니어링. 그리고 영원히 ‘자유로운 영혼’ 헬렌 니어링. 헬렌은 젊은 시절 크리슈나무르티의 연인이었다.

보리에서 펴낸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두 사람이 53년동안 함께 한 ‘땅에 뿌리박은 삶’을 들려준다.

조화로운 삶, 참으로 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을 통해 두 사람이 완성해 나간 사랑은 어떤 것이었을까.

스코트는 헬렌에게 이런 연시를 바쳤다.

‘나는 백합꽃이 빛나는 한 정원을 알고 있습니다/그리고 거기서 햇빛을 쬐며 생각에 잠겨 있는 한 사람을//…나는 춥고 어두우며 쓸쓸한 다락방을 알고 있습니다/그리고 지치지 않는 펜으로 수고에 수고를 거듭하는 한 사람을//…그런데 아, 이상한 일입니다/그이는 정원에서 그 여인의 곁에 있습니다/그리고 그 여인은 그이와 함께 다락방에 있습니다.’

헬렌은 이렇게 답하였다.

‘바람처럼 사세요, 자유롭게/그리고 당신이 할 수 있는 동안/나를 사랑해 주십시오//그리고 당신이 사랑하길 바라고/더 나아질 수 있다면/더 좋은 사람에게 가세요//…바람은 언제나 자유로우니까요.’

그들의 사랑은 따스한 감싸안음, 그리고 서로를 향한 열린 마음이었다.

화장지도 네모 반듯하게 접어 쓰는 남자와 침실에서 아무렇게나 옷을 벗어던지는 여자의 만남. 서로 다른 두 개성의 만남은 전혀 새롭고 예기치 못한 삶의 생기를 불어넣는다.

상상해 보라. 그들이 어느 따뜻한 봄날, 오스트리아의 한적한 구릉지에서 옷을 몽땅 벗고 커다란 스키화와 스키만을 신은 채, 깔깔거리며 경사면을 내달리는 장면을.

앨버트 허버트였던가. ‘건강 책 일 그리고 여기에 사랑이 더해진다면 운명이 주는 모든 고통과 아픔도 견딜 만해진다….’

스코트는 헬렌에게 남편이면서 현인(賢人)이었다. 현명한 연장자와 사는 것은 ‘학교수업’과 ‘휴일’이 하나로 합쳐지는 즐거움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헬렌은 언제나 자유롭고 싶은 영혼이었다. ‘새처럼 아무 계획없이, 행복하고 순수하며 빠른 날개로 날고 싶다. 나는 사람들과 사회의 바퀴 아래 갇혀 있고 싶지 않다. 나는 사람들과 사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스코트는 이렇게 타일렀다.

“억압이 있는 이 세계에서 당신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낮은 계층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그 속에 있습니다. 범죄의 요소가 있는 한 우리는 그 일부입니다. 감옥에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꾸짖는다.

“지금까지 당신은 새처럼, 당신의 자유로써 현재와 순간의 자극들을 충족시켜왔습니다. 하지만 새들은 둥지를 틀고, 식구를 먹여 살리며, 그 안녕을 책임집니다. 당신은 그렇게 해본 일이 있습니까? 아니오. 당신은 다만 자유의 지점에까지 나아갔을 뿐입니다. 그것은 무책임입니다.”

스코트가 헬렌을 이끈 삶은 소로가 ‘월든’에서 체현했던 그것. 날마다 자연과 만나며 발 아래 흙을 느끼는,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들과 조화를 이루는 삶. 검소하고 스스로 만족하며 자립하는 삶. 스스로 먹을 양식을 키우고 살 집을 지으며 필요한 나무를 베고 홀로 자신의 생활수단을 마련하는….

‘진정한 경제학자’ 스코트의 생활수칙.

당신의 수입 안에서 생활하라. 얻은 것보다 덜 쓰라. 쓴만큼 지불하라. 구두 한 켤레, 모자 하나, 외투 한 벌, 넥타이 한두 개, 허리띠 하나, 그것으로 족하다. 그것은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는 평생의 철학이었다.

마침내 스코트의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을 때 헬렌은 사랑과 삶, 죽음이 사실은 한 고리에 엮인 어떤 것임을 느낀다. 그는 잃음이란 사랑에 뒤따라오게 마련인 자연스러운 경험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잃는다는 것은 삶의 단절이 아니라 다른 국면이며, 춤의 중단이 아니라 그 다음 차례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 손에 이끌려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앞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 춤의 슬픈 장면이다….’

진정한 예술가란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온 삶에서 모든 생각과 행동을 아름다움에 맞추는 사람이 아닐까. 어떤 예술도 따라잡을 수 없었던 이들 부부의 삶은, 그 삶 속에 그들의 예술을 오롯이 녹여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스코트가 백 번째 생일을 맞던 날, 이웃사람들은 깃발을 들고 그를 찾아왔다. 그 깃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스코트 니어링이 백 년 동안 살아서 이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되었다….’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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