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현진/더딘 공기업 규제완화

  • 입력 1998년 3월 17일 20시 02분


2백원짜리 국산 솔 담배를 사서 뜯어보면 안에서 양담배 개비가 나오는 일이 왕왕 있다. 한국담배인삼공사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소매상에서 파는 외국산 담배를 강제로 수거하고 그만큼 국산 담배로 바꾸어주었다. 이렇게 거둔 양담배를 소각하거나 솔 등 잘 팔리지 않는 국산 담뱃갑에 넣어 다시 판매했다.

담배인삼공사는 최근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다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으면서도 ‘시장에서 공정하게 싸울 다른 수단이 없다’고 울상이다.

외국산 담배업체들은 막대한 판매장려금 자녀학자금 등으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데도 공사는 손발이 묶여 있다. 공기업이라 가격규제와 함께 판촉비도 매출액의 0.5% 이내로 규제받는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작년에는 가벼운 경고에 그쳤으나 올해는 외국투자자의 눈길이 매서워 중징계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담배인삼공사뿐만 아니라 한국전력 한국통신 한국중공업 등 대표적인 공기업들이 조만간 경쟁체제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계은행(IBRD)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국내 공기업에 경쟁체제를 도입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공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을 외국 기업에 개방하라는 이야기다.

경쟁체제 도입이나 외국인 문호개방에 앞서 공기업들이 경쟁체제에 적응할 수 있는 기반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각종 규제로 공기업을 묶어두고 덜컥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외국인 투자 및 영업활동과 관련한 규제는 급속히 풀어주면서 국내기업의 규제완화 속도는 느려 터졌다”고 재계는 불만을 터뜨린다.

<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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