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 칼럼]정당정치는 사치인가

  • 입력 1998년 3월 13일 20시 49분


미국의 한 경제주간지는 최근호에서 ‘파당정치는 지금 한국이 결코 누려서는 안될 사치’라고 지적했다. 모멸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아무리 우리가 정당정치를 하는 나라라고 강변해본들 외국인의 눈에는 파당정치로 비칠 뿐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외국언론의 그런 지적이 아니더라도 총리인준 파동을 겪으면서 우리는 부끄럽지만 그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형식은 정당정치임에 틀림없으나 실제 행태는 파당정치 패거리정치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 「진흙탕 싸움」언제까지 ▼

우여곡절 끝에 대화국면으로 U턴하면서 가파른 대치정국에 일단 숨통이 트인 것은 다행이다. 추경안을 비롯해 우선 화급한 몇몇 안건은 국회에서 합의처리가 될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의 해빙(解氷) 시늉은 빗발치는 여론의 압력 때문이지 여야의 대오각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전략의 수정이고 일시 휴전일 뿐 대결구도에는 하등 변화가 없다. 총리인준 북풍국정조사 경제청문회를 둘러싼 불씨들은 그대로다. 또 일정기간 정쟁(政爭)중지를 합의한다 해도 숨고르기가 끝나면 또 언제 어떤 사단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이자 의회정치라고들 한다. 또 국회의원 치고 의회주의자임을 자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국회에서 정상적으로 국사가 논의 결정되는 나라가 아니다. 밖에서 실력자끼리 이른바 사전 절충을 하고 국회는 그것을 추인하는 요식절차를 거치는 곳 쯤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번에도 그렇지만 밖에서 모든 것을 다 결정하고 들어간다면 그런 국회가 무슨 소용인가. 민의를 수렴하는 토론의 전당(殿堂)으로 이름붙이기 민망하다.

야당경험 있는 여당, 여당경험 있는 야당을 한번 가져봤으면 하는 것은 우리 정치의 오랜 숙원이었다. 수시로 정권을 주고받는 민주선진국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우리도 그렇게만 된다면 정치풍경은 무엇이 달라도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서로 입장을 바꾸어 여당을 하면서도 야당할 때를 생각하고, 야당하면서도 여당할 때를 생각한다면 신물나는 삿대질이나 험악한 난투극이 왜 일어나겠는가.

그러나 50년만의 첫 수평적 정권교체 후 보름간의 정치실험 결과는 ‘그게 아니로소이다’다. 공수(攻守) 주체만 맞바꿨을 뿐 치고받는 작태는 옛 그림 그대로다. 힘으로 밀어붙이기나 연계전략이나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미운 시어머니 욕하면서 배운다더니 몹쓸 것만 서로 골라 닮아가고 있다. 양비론(兩非論)이 안나올 수 없다. 갈 길은 먼데 이런 비생산적인 구태(舊態)정치로 어떻게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답답하다.

우리는 지금 국제통화기금(IMF)한파의 어둡고 긴 터널에 갇혀 있다. 힘을 합쳐 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이 그 터널 속에 미로(迷路)같은 터널을 또다시 만들고 진흙탕 싸움으로 발목을 잡는다면 우리는 이 숨막히는 터널 속에 영영 주저앉고 말지도 모른다. 당장의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외국 금융 투자가들을 안심시키는 일이 급한데 정치쪽이 이래서는 희망이 없다.

▼ 국민의 고통 직시해야 ▼

어느 중진의원은 대화로 방향전환은 했어도 결국은 ‘인내의 대결’이라고 호언했다. 장기전으로 버티고 겨루다 보면 어느 쪽인가는 손을 들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얻을 것이 무엇인가. 그통에 죽어나는 것은 국민이고 나라다. 위기에 처한 국가를 앞장서 이끌지는 못할망정 정치권이 이럴 수는 없다. 마지못해 하는 ‘대타협’일지라도 모처럼의 화해분위기를 어떻게든 살려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여권은 거대야당의 협력없이는 원만한 국정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야당 또한 칼자루 쥔 쪽은 여당이고 자신들은 칼날을 쥐고 있음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남중구(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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