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차병직/DJ비자금 수사발표를 보고…

  • 입력 1998년 2월 23일 19시 14분


‘가난하게 사는 것이 나의 계획은 아니다. 단지 생계를 유지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바치면서 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콩코드의 숲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던 소로에게는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어지러운 나라에서, 그것도 정치판 한가운데서 생의 활로를 모색하는 사람들에겐 많은 돈이 필요했다. 물론 그것은 생계유지 이외에 필요한 돈이다. 언제부터인가 돈의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를 곡예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정치인의 정치자금이냐 뇌물이냐, 판사실의 실비냐 뇌물이냐 하는 경계는 실로 종이 한장 정도의 차이일 뿐인가. 그러면 범죄행위임은 누가 확정하는가. 법원인가, 검찰인가, 아니면 시민의 고발정신인가. 물론 제도적으로야 법원의 판결에 의해 범죄여부가 최종 확인되겠지만, 검찰의 수사와 거기에 대한 시민의 감시의 눈이 어우러져 이 사회의 깨끗함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스템이 가동된다. 그러한 시스템의 정상적인 작동을 억제하거나 무시하는 요소가 개입될 때에는 혼탁의 찌꺼기가 다시 인다. 대검 중앙수사부는 한나라당이 고발한 김대중차기대통령에 대한 대선 비자금 수사를 종결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비자금’으로 불렸던 돈은 ‘정치자금’으로 결정됐다. 정치자금이란 돈의 성격은 무혐의의 근거가 되었고, 짧은 공소시효와 화살과 같은 지난 세월은 예비적으로 공소권 없음의 터전이 되었다. 이번 수사에서 상찬할 만한 일은 검찰이 ‘20억원 플러스 알파’에서 알 파의 일부분과 상당액의 비자금을 밝혔다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미진은 피고발자에 대한 부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의 발단이 된 배재욱청와대사정비서관의 7백여개에 이르는 은행계좌 추적사실은 확인되었다. 그리고 그 자료는 수석비서관들과 정형근의원을 통해 당시 이회창후보에게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두 관련자들에 대해 입건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권력을 이용하여 스스로 만든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명령을 근원적으로 흔들어놓은 행위에 대해 눈을 감고 만 것은 교체하는 두 정권에 대한 검찰의 선물로 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 대가로 상대방측에 대한 수사권 발동을 자제한 미덕은 혼란스러울 뿐이다. 양쪽을 적당히 만족시키고자 의도한 검찰의 결정은 어느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결과가 되었다. 검찰의 이 사건에 대한 결정은 예상되었던 것이다. 검찰은 일찌감치 수사를 대통령 취임식 전에 종결할 것이며, 그 결과는 무혐의가 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따라서 예상되었다기보다 예정되어 있었다. 취임 이전에 종결한다는 것은 신임 대통령으로서의 공직 수행에 지장이 없도록 한다는 배려일 것이다. 그런 사정 아래서의 취임전 종결은 물론 무혐의일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지난 두어달간 검찰은 예정된 무혐의의 결론에 이르는 이유의 논리적 구성에만 골몰했단 말인가. 다소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더 설득력 있는 과정을 거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비록 법적 책임이 없다면 도덕적 책임은 어떻게 되느냐는 의구심도 생긴다. 이렇게 본다면 검찰의 이번 결정은 결국 또 하나의 미완의 종결을 작품으로 남겼을 뿐이다. 오히려 과거에 대한 법적 도덕적 책임을 분명히 짚어주는 것이 신임대통령에게 정당성과 힘을 부여해 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검찰이 안타깝다. 그것이 검찰의 정치적 판단력의 한계인지 모르지만, 법적 책임을 법적 논리로 면제하고 도덕적 책임을 정치적 논리로 은폐하고자 할 때 그것이 앞으로의 맑은 사회 만들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차병직(변호사·참여연대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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