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44)

  • 입력 1998년 2월 19일 08시 32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112〉 남편이 소리치자 저는 너무나 무서워 더 이상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그 순간 제 눈 앞의 모든 사물이 노랗게 보였습니다. “맹세를 저버리고 몸을 더럽히다니!” 노여움으로 눈이 뒤집힌 남편은 부들부들 몸을 떨며 소리쳤습니다. 그리고는 소리쳐 노예들을 불렀습니다. 문이 활짝 열리고 일곱 명의 흑인 노예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저 더러운 년을 침상에서 끌어내려 방 한가운데 내동댕이 쳐라!” 노예들이 들어오자 남편은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명령을 받은 노예들은 그러나 처음 한동안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했습니다. 그러던 끝에 그들은 결국 주인이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남편은 또 노예 한 사람에게 저의 손을 묶은 다음 머리를 타고 앉으라고 일렀습니다. 명령을 받은 노예는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이어 남편은 또 다른 노예에게 저의 무릎을 타고 앉아 다리를 단단히 누르고 있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남편은 칼을 뽑아 세번째 노예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자, 사이드, 이년을 두 동강 내도록 하라. 그리고 그 더러운 몸뚱어리를 각기 한 동강씩 티그리스 강에다 던져버리도록 하라. 물고기 밥이나 되도록 말이다. 맹세를 깨뜨리고 사랑을 배신한 년에 대한 보답이다.” 칼을 받아든 노예는 그러나 차마 저를 벨 수가 없었던지 머뭇거리고만 있었습니다. 그러한 노예를 향하여 남편은 재촉했습니다. “자, 사이드, 베어라!” 그러자 저의 몸을 타고 앉아 있던 노예가 몹시 황송한지 저를 굽어보며 말했습니다. “아씨, 마지막으로 신앙고백이나 하십시오. 무엇이든 못다한 말씀이 있으시면 지금 생각해내십시오. 아씨는 이제 이 세상을 하직해야 할 것 같으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그를 올려다보며 저는 말했습니다. “고맙다. 그런데 잠깐만 내 머리에서 비켜나다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그러자 노예는 얼른 제 머리에서 비켜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겨우 머리를 쳐들 수 있었습니다만, 저의 처지는 참담하기만 했습니다. 그 고귀한 신분에서부터 수치스러운 오욕 속으로, 그처럼 행복했던 삶에서부터 죽음 속으로 빠져들게 된 것이 한 순간에 저지른 저의 죄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되자 저는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성난 눈으로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사랑을 저버리고 원수로 갚는 계집이여! 너에게도 눈물이 남아 있었더냐? 울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나다! 사랑의 배신감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받는 사람은 나다!” 이렇게 말하며 남편 또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한 남편의 발 밑에 엎드려 저는 눈물로써 애원하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습니다. “내가 받드는 일신교(一神敎)는 이부종사(二夫從事)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한 남편은 다시 노예를 향하여 고함쳤습니다. “단칼에 두 동강을 내라! 이런 년과 더불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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