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20)

  • 입력 1998년 1월 22일 09시 22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88〉 항해에 앞서 저는 두 언니를 불러 말했습니다. “언니들은 어떻게 하겠어요? 내가 없는 동안 집에서 기다리겠어요, 아니면 나와 함께 가겠어요?” 그러자 큰언니가 말했습니다. “얘야, 그 낯선 외국엘 너 혼자 보내고 어떻게 우리가 안심할 수 있겠니? 우리도 너와 함께 여행을 하겠어.” 작은 언니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와 떨어져 있다니, 우린 참을 수 없을 거야.” 이 말을 들은 저는 말했습니다. “언니들 생각이 그렇다면 좋아요. 함께 가기로 해요.” 그리고 저는 가지고 있던 돈을 둘로 나누어 반은 몸에 지니고 나머지 반은 고향에 있는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항해 중에 사고라도 당하여 재산을 모두 잃어버리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나머지 반이 있다면 그 돈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두 언니와 저는 미지의 도시를 향하여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바람은 순풍이었고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기만 했으므로, 항해는 더없이 순조롭기만 하다고 우리는 믿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바소라를 떠나 열흘째 되던 날부터 배는 그만 진로를 잃고 낯선 바다를 헤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선장은 처음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승객들의 동요를 막기 위하여 비밀에 부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항로에서 벗어나 지향없이 떠돌던 배는 마침내 목적했던 바다와는 전혀 다른 어떤 바다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도 며칠이 지났을 때, 돛대 꼭대기에 올라가 망을 보고 있던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도시다! 도시가 보인다.” 이 말을 들은 선장은 안도하는 표정으로 소리쳐 물었습니다. “어떻게 생긴 도시인가?” 망을 보는 사람은 대답했습니다. “꼭 비둘기만한 도시입니다.” 이 말을 들은 우리는 모두 기뻐했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뱃머리쪽 저 멀리 더없이 아름다운 도시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비둘기 깃털 색으로 칠을 한 도시의 건물들이 뚜렷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을 때 저는 선장에게 물었습니다. “저기가 어디죠? 저 도시의 이름은 뭐죠?” 그러나 선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습니다. “글쎄올시다. 저로서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여태까지 한번도 와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야 어쨌든,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무사히 도시에 당도했으니 이제 당신네들은 상품을 가지고 상륙하도록 하십시오. 돈벌이가 괜찮을 것 같으면 장사를 하고, 만약 그렇지 못하면 이틀 동안 머물면서 식량이나 보충하고 다시 떠나기로 합시다.” 배는 항구로 들어가 닻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선장은 뭔가 예사롭지 않은 예감이 드는 듯, 도시의 사정을 살펴보겠다고 하며 혼자 배에서 내려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쯤 뒤에 배로 돌아와 말했습니다. “여러분, 아무래도 이 도시에서는 장사는 틀린 것 같습니다. 장사는 틀렸지만 모두들 거리로 나가 알라께서 자기가 창조하신 인간을 어떻게 하셨는지를 구경이나 하십시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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