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옛그림으로 본 「미인관」

  • 입력 1998년 1월 21일 20시 15분


동그랗고 아담한 얼굴에 작은 아래턱, 다소곳한 콧날과 좁고 긴 코, 약간 통통한 뺨과 작고 좁은 입, 흐리고 가느다란 실눈썹에 쌍꺼풀 없이 가는 눈. 10대 소녀처럼 어리고 정적이면서 지적인 얼굴. 흔히 말하는 전통적인 한국미인상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의 모든 시대를 대표하는 미인상은 아니다. 단지 조선 후기의 미인형일 뿐. 한국회화사에서 가장 빛나는 ‘여인의 얼굴’은 조선후기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한없이 매혹적인 명작이지만 이것 역시 조선후기의 미인상을 보여줄 따름이다. 미인의 얼굴은 시대에 따라 늘 변한다. 미인형이나 미인관을 보면 그 사회가 진취적인지 퇴락해가고 있는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옛그림에 나타난 우리의 미인형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미인관은 어떻게 변하는 것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적인 흐름이 있다. 얼굴전문가인 조용진 서울교대교수(미술학)의 설명을 들어보자. “미인의 얼굴형을 구분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기준은 턱의 크기다. 왕조의 초창기같은 진취적인 시대엔 턱이 큰 여성이, 안정기엔 보통 턱의 여성이, 쇠락 퇴폐의 조짐이 보이는 말기에 이르면 턱이 작은 여성이 미인으로 대우받는다. 한 시대의 말기엔 지나치게 외형적 감각적인 미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신윤복 그림이나 작자미상의 ‘미인도’, 김은호의 ‘성춘향’등이 바로 턱이 작은 조선후기의 미인형. 미간에서 코 끝까지(중안·中顔)를 1백으로 보고 코 밑에서 턱 끝까지의 비율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고대 그리스 미술품의 경우, 초기엔 1백 대 1백∼1백10, 중기엔 1백 대 1백, 말기엔 1백 대 86∼93. 프랑스 낭만주의시대의 미인도 턱이 작다. 신윤복의 미인도는 1백 대 90. 조교수는 “한 시대나 왕조 초기엔 건강하고 발전적인 사회분위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미인관 역시 어른스럽고 남성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해 맏며느리형의 큰 얼굴, 즉 턱이 큰 미인을 선호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고구려, 고려 조선의 전기 중기가 그러하다. 고구려 수산리 고분벽화엔 여자 주인공과 시녀가 등장한다. 시녀가 주인공보다 얼굴이 작고 더 여성스럽다. 고구려는 진취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남성미를 선호했고 따라서 중요한 주인공 여성의 얼굴을 남성적이고 어른스럽게 묘사했다. 고려시대는 어떠한가. 미인도가 남아있지는 않지만 불화를 보면 초기의 큰 턱이 말기엔 매우 작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전기 중기는 채용신의 ‘운낭자상’을 통해 당시의 미인형을 추정해볼 수 있다. 넉넉한 얼굴에 중안이 길고 턱이 크다. 말기의 미인은 낭만적이고 아름답긴 하지만 자칫 관능미 퇴폐미로 빠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지금 우리는 작은 턱, 작은 얼굴을 선호하는 세기말의 극단적 미인관으로 치닫고 있다고 조교수는 우려한다. 진취적 기상이 필요한 국제통화기금(IMF)시대, 우리의 미인관도 변할 것인가. 조교수는 그렇다고 단언한다.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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