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동우/무너지는 한국의 홍콩시장

  • 입력 1998년 1월 20일 20시 12분


지난해 여름 홍콩에 진출했던 국내 모 금융사는 반년여만인 최근 황급히 철수하면서 4억∼5억원의 돈을 홍콩의 부동산소유자들에게 헌납하게 됐다. 건물주측이 이 회사를 상대로 ‘계약기간이 3년인만큼 남은 계약기간의 임대료를 완납하라’는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요즘 홍콩 중심가의 호화 빌딩에 입주해 있던 국내 은행 종금사 증권회사 리스회사 등이 무더기로 철수하고 있다. 그 부작용으로 평균 2개월치 임대료를 떼이거나 심한 경우 남은 계약기간의 임대료 전액 또는 일부를 지불해야 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계약기간이 대부분 2년이상인 데다 ‘기한만료 이전에 계약을 해지할 경우 남은 기간의 임대료를 지불한다’는 조건이 계약서에 규정돼 있어 법적으로 대응할 방법이 없다. 사무실뿐만 아니다. 지난해 12월 새로 아파트를 옮겨 월 3만홍콩달러에 1년간 임대하기로 계약했던 모 상사 주재원은 이사 한달만에 본사로부터 철수명령을 받았다. 그는 10개월치 임대료를 완납하라는 집주인을 간신히 설득해 결국 6개월치를 내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각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철수가 일시에 몰리면서 빚어지고 있는 엉뚱한 외화낭비 사례들이다. 금전적 손해뿐만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영자원과 노하우의 손실은 이보다 훨씬 클지도 모른다. ‘총성 없는 상전(商戰)’이 치열한 홍콩에서 오랜 기간과 상당한 비용을 들여 구축해 온 인적 자원과 거래선, 정보망 등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있다. “진출할 때 무식할 정도로 경쟁적으로 몰려오더니 철수할 때도 마치 군사 작전하듯 일시에 빠져나가는군요. 한명씩은 남겨두어야 미래에 대비가 되지 않을까요.” 한 교민이 안타깝다면서 지적한 말이다. 정동우 <홍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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