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18)

  • 입력 1998년 1월 20일 08시 59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86〉 “오, 충성된 자들의 진정한 임금님, 어젯밤에 제가 임금님을 몰라 뵈옵고 한 무례한 짓은 용서해 주십시오. 임금님의 노여움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면 모든 사실을 거짓 없이 털어놓겠습니다. 사실 저의 신세 이야기는 기이합니다. 남을 보고 자기를 바로잡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본보기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부디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교주 앞으로 나선 여주인은 이렇게 자신의 신세 이야기를 시작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이 두 마리의 검은 암캐는 저와 한 부모를 가진 친언니들이랍니다. 저의 두 언니가 이런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 내력과 밤마다 제가 이 언니들에게 가혹한 채찍질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연은 이런 것입니다.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시자 저희 세 자매는 상당한 유산을 분배받았습니다. 그뒤 두 언니는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신혼의 재미가 끝나기도 전에 형부들은 언니들의 돈으로 상품을 사들인 뒤 모두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갑자기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몇 년 뒤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누더기를 걸치고 낡아빠진 베일을 쓴, 정말 초라하고 비참한 꼴을 한 거지 여자 하나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동냥을 온 거지인 줄로만 알고 동전 몇 닢을 꺼내어 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돈을 받으려고는 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날 알아보지 못하겠는가 보지?” 이 말을 들은 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름아닌 오 년 전에 떠난 큰언니의 목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어머! 이게 누구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언니?” 내가 이렇게 소리치자 큰언니는 더없이 비참한 표정을 지을 뿐 차마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형부는 어디 가고 언니 혼자 돌아왔어?” 그러자 큰언니는 몹시 고통스런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오, 동생아, 이야기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니? 모든 것이 운명의 신 알라께서 결정하신 일이었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형부들은 처를 데리고 객지로 떠돌면서 돈을 다 써버리고 파산해 버렸던 것입니다. 한푼 없는 알거지가 되자 그들은 아내를 낯선 타향 사람들 사이에 버리고 가버렸던 것입니다. 저는 언니를 목욕시키고 새 옷으로 갈아입힌 다음, 뜨거운 국을 먹였습니다. 그리고 기운을 돋우게 하려고 좋은 술을 마시게 했습니다. “언니, 언니는 나이가 가장 위일 뿐 아니라, 우리한테는 아버지나 어머니 같은 분이에요. 다행히도 내가 받은 유산은 그동안 상당히 불어났어요. 그동안 나는 실을 잣고 비단을 세탁하는 등, 열심히 돈을 벌었으니까요. 이만한 돈이면 우리 두 사람이 평생을 안락하게 살 수 있어요. 나는 이 돈의 절반을 언니한테 나누어 드릴게요.” 나는 이렇게 말하며 진심으로 언니를 위로했습니다. 큰언니는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습니다만, 저는 오랜 외톨이 신세를 벗어나 언니와 함께 살게 된 것이 무척 행복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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