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 배심원평결]설날 시골 큰댁에 가야하나?

  • 입력 1998년 1월 14일 19시 42분


▼ 며느리 ▼ 권오향 (31·주부·서울 송파구 잠실동) 설날이 가까워 오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아직은 아버님께서 아무 말씀도 없으시지만 올해도 전북 부안의 큰댁으로 아들 삼형제와 며느리들까지 차례를 지내러 가야할테니까요. 명절 차례는 우리 가족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행사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 일이 몹시 마음에 걸리는군요. 이제 10개월된 아들 종서 때문이에요. 종서에게는 너무 고된 여행길이 될 것 같아서요. 저희 가족은 큰댁에 갈 때면 새벽에 도착할 수 있도록 으레 자정 직후에 떠납니다. 너무 일찍 도착하면 차안에서 기다리기도 해요. 차례가 끝나면 친척들에게 세배를 드리고 서둘러 서울로 돌아 옵니다. 쉴 시간이 없는 강행군이에요. 종서가 돌이라도 넘겨서 우유도 떼고 걸어다닌다면 좀 낫겠어요. 지금은 한번 움직이려면 우유병에 이유식에 챙겨야 할 짐만 해도 한보따리거든요. 게다가 한복까지 입고 가야 하니 아이 돌보기가 더 불편해요. 저희 아버님, 참 자상한 분이세요. 하지만 가족간의 화목을 해치는 일에는 엄격하시지요. 큰며느리인 저도 아버님 뜻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거스르고 싶지 않은데 이번만큼은 ‘예외’로 해주시면 안될까 생각만 간절합니다. ▼ 시아버지 ▼ 박병호 (61·자영업·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말은 안해도 큰 며늘아기가 설날 차례지내러 갈 일이 걱정인 모양입니다. 사실 저도 애들한테 이래라저래라 말은 못하고 어떻게 결정을 내리려나 기다리고 있어요. 저야 물론 같이 가고 싶지만 따라주면 고맙고 아니면 섭섭한 거지 강요야 할 수 있나요. 젊은애들은 명절 때 먼길 간다는게 귀찮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족간의 우애를 어떻게 지킬까 싶습니다. 사촌들끼리도 결혼식 때나 삐죽이 얼굴 마주칠까, 객지에 살다보니 모일 기회도 없잖아요. 아이들 고생 덜어줄 생각 안한 건 아닙니다. 형님이 돌아가신 뒤 서울에 사는 큰조카에게 제사를 모시라고 권했지만 고향에 계시는 형수님이 “나 살아있는 동안에라도 고향에서 모시자”고 해 뜻에 따르기로 한 거예요. 손자 종서가 고생하지 않을지 저도 걱정돼요. 하지만 승합차 한대에 식구들이 다 타면 전용차선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편도 3시간이면 됩니다. 사실 손자 자랑도 하고 싶습니다. 첫손자 종서가 아직 한번도 고향에 간 적이 없거든요. 팔순의 숙부랑 고향친척들에게 잘 생긴 첫 손자 얼굴 한번 보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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