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11)

  • 입력 1998년 1월 13일 08시 11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79〉 처녀들은 울면서 말했습니다. “오, 낭군님. 실은 저희들 모두는 왕의 딸이랍니다. 그리고 이 궁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버님께서 딸들을 위하여 특별히 지으신 비궁(秘宮)이랍니다. 아버님께서는 저희들을 몹시 사랑하시기 때문에 전에는 이 궁전에 오셔서 저희들과 함께 지내시곤 하셨습니다. 그러나 근년들어서는 저희들이 아버님께로 가 한 해에 사십 일씩 아버님과 함께 지내곤 한답니다. 따라서 저희들은 해마다 이 궁전을 사십일 동안 비운답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다시 돌아와 다음 해 새해가 될 때까지 여기서 지낸답니다. 이제 저희들은 관례에 따라 떠납니다. 따라서 저희들은 당신과 작별하지 않을 수 없답니다.” 이렇게 말한 처녀들은 다시 슬피 울었습니다. 그녀들과 작별해야 한다는 말에 나 역시 슬펐습니다만, 사십 일이 지나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말했습니다. “사십 일 후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뭐 그렇게 슬퍼할 것도 없지 않소?” 그러자 처녀들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신이 사십 일을 무사히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것이랍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그까짓 사십 일을 기다리지 못해 가버리기라도 할 것 같소? 나는 말이오, 사십 일이 아니라 사십 년이라도 기다릴 거요.” “그렇지만 그 사십 일 동안 당신은 저희들과 한 가지 약속을 지켜 주셔야 한답니다. 만약 당신이 그 약속을 이행해 주시면 사십 일 후에 우리는 다시 만나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 약속을 저버리게 되면 영원히 이별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슬피 우는 것도 실은 당신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 봐서입니다.” “내가 지켜야 할 약속이라는 게 뭐요?” 그러자 처녀들은 마흔 개의 열쇠가 달린 열쇠꾸러미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이것은 이 궁전에 있는 마흔 개 방을 열 수 있는 열쇠들이랍니다.저희들이 이것을 당신께 맡기고 가겠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지켜야할 약속이란, 이 열쇠들을 가지고 서른아홉 개의 방문은 열어도 좋지만 마지막 하나의 방, 즉 마흔번째 방문은 열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라의 이름을 걸고 말씀드립니다만, 만약 당신이 마흔 번째 방문을 열게 되면 모든 것은 끝장이랍니다. 그 속에는 우리들 사이를 영원히 갈라놓는 것이 들어 있으니까요. 마흔 번째 방문은 절대 열어보지 않겠다고 맹세할 수 있겠어요?” 그러자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런 문제라면 염려하지 말아요. 절대 열지 않을 테니까요. 그 속에 그대들과 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 들어 있다면 더더욱 말이오.” 그러자 처녀 하나는 내 목에 매달리며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야속한 이 세상도 미소를 지으련만. 당신의 모습 다시 뵐 수만 있다면 이 몸은 그대의 신발이 되고 그대의 속옷이 되어, 영원히 그대 몸에서 떨어지지 않으련만.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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