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에 재계가 속도조절을 요구하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옳지 않다.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 해소와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로 재벌 경영을 투명화하고 거품을 빼는 일은 급하다. 민주주의와 경제를 병행 발전시켜 정경유착 관치금융 방만경영을 뿌리뽑겠다는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과 재벌간의 힘겨루기가 시작된 느낌이다.
이번에도 재벌개혁이 또 미뤄진다면 과잉 중복투자와 빚더미 경영 같은 폐해를 개선할 기회를 다시 찾기 어렵다. 재벌들이 한나라당과 손잡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개혁에 제동을 거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경제파탄에 책임이 큰 재벌들이 개혁에 멈칫거린다면 말이 안된다. 과거 30여년간 온갖 특혜와 권력의 비호아래 성장해온 재벌구조를 쇄신하는 일이야말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필수적이다.
상호지급보증 해소와 결합재무제표 작성은 어제 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다. 따라서 이를 수용하는 데 시간을 달라는 요구는 설득력이 없다.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면 재벌부도 등 경제가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주장도 국민경제를 볼모로 기득권을 잃지 않겠다는 엄포나 다름없다. 재벌들은 로비나 엄포로 개혁을 피하기보다 21세기 생존전략 차원에서 자기개혁에 앞장서기 바란다.
김차기대통령은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재벌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과거 정권과 달리 재계에 부담이 작은 차기 정권에 재벌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려선 안된다. 재벌구조를 수술하지 않고는 국민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할 수도 없다. 다만 정부는 인수합병(M&A)과 세제지원 금융개혁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을 최대한 뒷받침할 제도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재벌 개혁의 성패는 새 정부의지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