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임창렬부총리 『올 상반기 흑자유지가 열쇠』

  • 입력 1998년 1월 6일 20시 00분


《경제가 계속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새 정부 인수팀도 갖가지 처방을 꺼내놓고 있다. 현 정부 마지막 경제팀장으로 ‘차기팀’과 함께 뛰고 있는 임창열(林昌烈)경제부총리를 본보 배인준(裵仁俊)경제부장이 만나 보았다.》 [대담=배인준 경제부장] “올해 상반기 동안 국제수지 흑자 기조만 정착시킬 수 있다면 외환위기는 끝낼 수 있습니다.” 6일 만난 임창열(林昌烈)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의 위기타개 키워드는 ‘국제수지 흑자’였다. 임부총리는 “현상태에서 외환위기가 해소됐다고 장담하는 것은 무리”라며 “단기외채를 중장기 외채로 전환하는 것이 지금 추진중인 현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금융경색으로 건실한 기업이 흑자도산하거나 수출업체가 가격경쟁력 여건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수출환어음 할인을 못해 수출에 차질을 빚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보완 방안을 마련중”이라며 이를 곧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고금리유지 정책 등이 기업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인식에 따라 IMF와 협상 당시 정했던 올해 거시지표들에 대한 전반적인 재협의를 2월까지 해나갈 것이라는 얘기다. ▼ 수출증대로 기초체력 회복 ▼ IMF가 제시한 거시지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구상은 기업의 흑자도산을 막기 위해서 불가피하다는 게 그의 생각. 지난해 11월21일 취임 이틀만에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던 그는 한달 보름 사이에 통상산업부 장관 시절보다 흰머리가 늘었고 얼굴도 한결 까칠해 보였다. 임부총리는 ‘단기 외채의 중장기 외채로의 전환→해외 은행들의 신규 여신 재개→해외투자자들의 투자’를 외환위기 해결의 수순으로 보고 있었다. 정부는 단기 외채의 중장기 외채로의 전환을 위해 해외 금융기관들과 협의중이다. 이처럼 아직 갈 길이 먼 만큼 수출증대를 통해서 국제수지의 흑자기조를 유지하는 ‘기초체력 회복’이 중요하다는 인식이었다. “외환사정이 다시 어려워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장담은 무리”라며 현재 상황이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태임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국제수지 흑자기조를 굳혀야 합니다. 올해 상반기동안 흑자만 나면 외환위기 상황을 끝낼 수 있지만 적자가 난다면 부담스러워질 겁니다.” ‘국제수지 흑자유지’라는 말이 인터뷰 도중 서너 차례 거듭 나왔다. 이같은 맥락에서 그는 수출업체들이 신용장을 개설하고도 금융기관의 비협조로 수출을 못하는 현실에 대한 처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이날 밝힌 대책은 은행이 수출입 환어음을 매입한 뒤 결제할 때까지의 과정에서 생기는 환율변동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 종전에는 수출업체가 수출환어음을 은행에 매각하면 은행은 달러화를 내주었기 때문에 환율이 상승할 경우 환차손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 은행이 수출환어음을 매입하고 대금을 원화로 내주는 방식을 검토중이라는 것. 그렇게 되면 수출업체로 환위험이 넘어오지만 은행이 환어음을 매입해주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환어음 매입기피 현상은 사라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은행들이 원화자금을 필요로 하면 한국은행이 총액한도 대출을 통해 지원하겠다는 방안이다. 재경원은 이와 관련, 은행들이 수출업체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환의 초과매입에 대해서는 6일부터 외국환관리법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단기 외채를 중장기 외채로 전환하는 것은 외채위기 극복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 중의 하나. 이에 대해 임부총리는 “현재 해외 금융기관들의 요구사항을 받아 그들이 요구하는 기간, 금리, 채권의 종류 등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해외 금융기관들에 현재 보유중인 채권의 상환 기간을 중장기로 전환하는 대신 금리를 높여주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또 해외금융기관들이 전환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는 정부의 지급보증도 해줄 방침입니다.” 그는 그동안 외채관리가 너무 허술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재경원이 어떤 식으로 재편되든 외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조기경보를 할 수 있는 ‘외채관리국’이 설치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부총리는 “지난해 IMF가 자금을 지원하면서 내세운 거시지표들은 당시와 사정이 많이 변한 만큼 재검토해야 하며 이미 작업이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그의 관심은 특히 ‘고금리 유지 정책’에 쏠려 있는 듯했다. “IMF와 협상할 때도 고금리정책은 한시적으로 유지키로 한 사항이었습니다. IMF가 요구한 긴축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경쟁력있는 기업이 유동성(자금) 부족으로 쓰러지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됩니다. 고금리정책은 서둘러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올해 금리 수준에 대해 연평균 15%선을 기대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가 최근 IMF 관계자와 수출업체간의 간담회를 주선한 것도 국제경쟁력이 있는 기업이 일시적인 금융위축과 고금리정책으로 자금이 돌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IMF측에 일깨워 주기 위한 것. 한편 그는 정리해고 실시시기에 대해 명확한 답변은 피했지만 조기 실시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을 내비쳤다. “법상의 정리해고 유예가 내년 3월까지로 돼 있어 시한이 사실상 1년남짓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1년후에 실시함으로써 현재 한계선상에 있는 기업의 근로자들이 도산과 함께 모두 실업자가 되느냐, 1년 먼저 실시함으로써 예컨대 제삼자 인수 등을 통해 70%에 해당하는 근로자는 일자리를 지키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임부총리는 “정리해고는 누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해야 할 문제”라며 “까놓고 얘기해 근로자들을 설득하고 모든 경제주체가 합의에 도달하는 멕시코식 노사정 대타협 모델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또 최근 정치권과 경제계의 화두가 돼 있는 재벌개혁과 관련, 그는 “IMF와 총론적인 합의가 있었다”며 “해외 투자자들이 투자를 시작한 시점과 일정 기간이 지난 후의 한국 기업 신용상태가 다르다고 불평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런 점에서 재벌 계열사간 상호 지급보증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재벌 계열기업이라도 모회사와는 별도로 각 회사의 신용에 따라 금융거래가 투명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 소로스 제안 실무검토 착수 ▼ 그는 최근 부도난 한라그룹 계열의 만도기계와 기아그룹 주력사인 기아자동차의 예를 들면서 이들 두 회사는 계열사간 지급보증만 없었더라면 건실하고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는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돈을 빌려다 쓸 줄만 알았지 직접투자를 받는 것은 꺼렸다”며 “만약 외국인 직접투자가 많이 이뤄졌더라면 기업의 경영이 더 투명해지고 외환위기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부총리는 기아자동차에 대한 산업은행의 출자를 통한 정상화가 불투명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솔직히 기아 문제까지는 아직 챙기지 못하고 있다”며 “일단 급한 불을 끄고 챙겨보겠다”고 답하는데 그쳤다. 그는 5일 한국을 떠난 국제금융계의 거물 조지 소로스가 한국에 10억달러 가량을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하면서 그가 제안한 ‘재금융공사 설립 운용’에 대한 실무적인 검토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재금융공사는 정부가 해외투자자와 국내 기업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해외투자자들이 한국기업에 대해 신뢰를 갖고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 국내 기업이 발행하는 전환사채(CB)를 정부가 보증하고 해외투자자는 정부보증 CB를 사들이는 것. 투자자가 해당기업이 믿을만하다고 판단할 때는 CB를 주식으로 전환, 한국기업의 주주가 되는 메커니즘이다. 임부총리는 최근 경제상황에 대해 “재경원이 예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보다는 좋은 상황”이라고 밝히면서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며 앞으로 요구되는 경제주체들의 고통분담 과정에서 정부가 최대한 고통을 떠안아 완충지대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정리〓이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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